황희연<한국학교 교사>
요즈음 가는 식품점 마다 과일 코너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과일들이 많다.
참외 같기도 하고, 허니듀 같기도 하고, 단감 같이 납작한 도넛 모양인데 복숭아 (Peach) 라고 쓰여있고, 분명 껍질은 수박처럼 초록색에 검정 줄 이건만 크기가 꼭 캔털로프 만한 것도 있다.
그 코너 앞을 서성이며 호기심으로 만져보고, 맛이 월등이 뛰어나다고 열심히 설명해 주건만 반신반의, 결정이 되지 않아 사 본 경험은 없다.
1980년, 미국으로 유학 온 외사촌 언니가 고모에게 보내온 편지를 보고 우리 식구들은 그 편지의 내용을 믿지 못 했었다. 어떻게 수박이 길다랄 수가 있을까? 어떻게 배가 닭다리 모양일까? 어떻게 포도를 껍질째 먹고 귤이 두주먹보다 크다는 걸까? 가로수인 감나무의 감을 아무도 따는 사림이 없고, 혹부리 영감에 나오는 깨금이 흔하다니…
5년 후 내가 미국에 오게 되었을 때, 식구들이 가장 먼저 궁금해 하며 물어온 것이 수박이 진짜로 길고 크며 씨가 없더냐? 닭다리 모양의 배 맛은 어떻더냐? 나 역시 장문의 편지를 그림을 곁들여 보내건만 숭례문인지 남대문인지는 서울을 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듯이 모두 믿지 못하는 분위기 였었다.
대학 때, 유전자학을 공부하며 양배추와 무, 토마토와 감자, 고추와 토란 등 뿌리식물과 줄기. 잎 식물이 공존 할 수 있는 유전자 변이에 대해 수 없이 토론 했지만 그것이 현실로 다가와 우리 생활 속에서 고정 관념을 파괴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
수박과 참외, 캐털로프의 장점을 모아 탄생 시켰다는 청개구리 멜론, 미끌거리지 않고, 한 손에 쏘옥 들어와 칼로 자르지 않아도 들고 먹기에 편하다는 도넛 복숭아, 감에 배의 시원하고 아삭 거리는 맛을 살렸다는 감배, 껍질이 얇아 더 달다는 노란 체리, 식구가 적어도 부담 없이 사서 냉장고 안에 넣어 보관이 편리하고 맛도 좋다는 복수박 같은 이 시대의 교배 과일들을 옛날 우리 할아버지가 보신다면, 그분은 분명 “세상 말세여, 자연의 이치를 거슬리면 천지 개벽이 되는 벱여, 하늘이 주신대로, 땅이 키운대로 그저 감사하며 먹어야 되는 벱여.” 하셨을 거다.
한여름 평상에 둘러 앉아 씨 없는 쪽으로 수박을 썰어 드리면, “수박은 툭툭 씨를 뱉으며 껍질을 덕덕 갈아먹는 맛으로 먹는겨.” 하시던 그 말씀이 생각나면서, 크고 동그란 얼굴로 인해 수박이란 별명으로 나를 불러 주던 사람들이 그 고정 관념에서벗어나길 나는 왜 기대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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