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의 출근길은 승용차, 버스, 자전거, 사람, 인력거, 당나귀가 뒤엉켜 혼란 그 자체다. 달리는 버스에 매달린 승객들이 70년대 서울을 연상케 한다.
탈레반 정권땐 반바지도 못입었는데…
“얼마만의 자유냐” 거리엔 활기
부르카속 여인들 짙은 화장과 하이힐
동네 공터마다 축구하고 연날리고
변화물결 뒤엔 남성 동성애 만연 부작용
‘이슬람 신권 정치의 대명사로 불리던 공포의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후 아프가니스탄의 사회상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변한다기 보다는 예전의 자유를 퇴찾았다고나 할까.
‘달님이여 천천히 가세요. 달님이 천천히 가면 내일 아침 햇님이 떠오르는 것을 잊어버릴 테니까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출신 작가 칼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연을 쫓는 아이’(The Kite Runner)의 한 구절이다. 소련침공 이전부터 탈레반 통치 시기까지 현대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 책은 2003년 출간된 이후 미국에서만 300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다.
탈레반 시절 금기였던 연 날리기는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 중 하나다. 바람이 많은 겨울철에도 이슬람 휴일인 금요일에는 카불 시내 어디에서나 연을 볼 수 있다.
어린이들은 축구에도 열광한다. 매일 해뜰 무렵과 해질 무렵 동네 공터는 공을 차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소련 점령기 북한인들이 들어가 처음 뿌리를 내린 태권도와 말을 타고 하는 아프간 전통경기인 부스카시, 레슬링도 인기다.
LA의 월드문화스포츠재단이 후원하는 카불 도네쉬 축구클럽 주장인 사이타 밋은 “탈레반 시절에는 반바지를 못 입게 했는데 이제는 자유가 있어서 좋다”고 전했다.
위성방송을 통해 전세계의 방송을 시청할수 있고 셀폰을 사용하는 사람도 많다. 접속이 자주 끊기기는 하지만 인터넷 카페도 등장했다. 영어교육 열기도 한국 못지 않다. 우즈베키스탄과 인접한 북부지역에서는 ‘겨울연가’ 같은 한국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등 한류 바람도 시작되고 있다. 물론 아직 도시에 한정돼 있다.
수도 카불시내는 출퇴근이면 세계 어느 대도시 못지 않은 차량정체로 몸살을 앓는다. 자동차는 계속 늘고있지만, 사거리에도 신호등조차 없고 차선 표시도 없어 온갖 방향의 차량들이 아수라장을 연출하며 뒤엉키기 일쑤다.
미군의 폭격은 아프간에 자유를 가져왔지만 이들의 삶은 뒤엉킨 교통만큼이나 혼란스럽다. 변화와 혼란의 상징은 여성들의 몸을 휘감는 부르카에서도 찾을수 있다.
카불시내에서는 부르카를 벗어 던진 여성들을 쉽게 만나지만 도시를 벗어나면 대부분 부르카 속의 가려진 삶을 살고 있다. 언제 돌아올 지 모르는 탈레반이 무섭기도 하고, 오랜 세월 착용해서인지 편하기 때문이다.
비정부기구인 IACD 여성문화센터 그레이스 강 디렉터는 “부르카 속의 여인들은 짙은 화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고 있다”며 “아프간 사람들의 결혼식에서 잔뜩 멋을 부린 젊은 여성들은 이중적인 이 나라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혼란하고 이중적인 모습은 비뚤어진 성생활에서 극단적으로 표현된다. 강 디렉터는 “성을 억압해서인지 동성애, 특히 남성간 동성애가 상상외로 일반화 돼 있다”고 말했다. 이를 증명하듯 아프간 정부는 올 들어 사원 내 세면장에 두 명의 남성이 동시에 들어가는 행위를 금지시켰다.
아프가니스탄에는 한가지 흥미로운 결혼풍습이 있다.
여자가 청혼을 하면 남자는 무조건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야 한다. 이를 거부하면 두 사람은 여자 가족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는다. 결혼을 거부한다고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는 서구적 잣대로 보면 이슬람의 모순으로밖에 이해가 안 되지만 그 본질에는 그들의 민족성이 숨어 있다.
유난히 자존심이 강한 이들은 전통을 깨고 남자에게 청혼 한 딸을 집안에서 그냥 둘수 없다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여성 쪽 집안에는 씻을 수 없는 치욕으로 생각해 명예회복 차원에서 응징을 한다는 것이다.
자존심이 강한 아프간 사람들이 UN과 미국 주도의 변화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탈레반 정권을 쫓아 내 긴 전쟁을 끝냈고, 자유도 줬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도 NGO도 등록제를 통해 관리하고, 자신들의 맘에 안 들면 쫓아내 자존심을 지키는 게 아프간 사람들이다.
카불 - 이의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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