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희<공예가>
그녀의 눈 안에 처음 들어온 그의 모습은 계단을 막 뛰어 올라오는 청자켓을 입은 청년이였는데, 그 모습이 참 밝고 맑게 느껴졌었단다. 그 즈음 언제부터인가 초코파이와 우유 , 귤 한개, 비스킷 한 봉지등이 그녀가 출근하기 전에 그녀의 책상위에 몰래 놓여져 있었는데, 며칠이고 계속 되었는데도 누구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더란다. 그러다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것을 가져다 놓은 사람이 청자켓 입은 청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그녀도 막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화끈거렸었다나.
첫 데이트를 어느 추운 겨울 날 호숫가에서 했었단다. 휘엉청 밝은 달이 호수위에 걸리고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밤이었지만 그녀는 너무 추웠단다. 그녀가 ‘아, 춥다’ 고 하자, 그 청년은 ‘난 별로 안 추운데…’ 그러더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말이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거다. 그냥 저 사람은 별로 안 추운가보다 라고만 생각했다나. 그 무뚝뚝한 남자가 그래도 좋았던 걸 보면 아마 그 때부터도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었나보다.
그래도 한번 싸운 적이 있었단다. 그녀가 단단히 삐쳐서 만나자마자 집에 간다고 쌩 하고 뒤돌아 걸었는데, 세 걸음 걷고 나서 꽈당하고 눈에 미끌어져 넘어졌단다 . 청년은 어디 안 다쳤느냐고 뛰어 오고, 부축해서 일으키고, 약국가서 약 바르고 하는 동안 왜 싸웠는지는 잊어버렸단다. 그 때부터도 건망증은 심했었나보다.
14년전 햇살은 따뜻했지만 추웠던 어느 2월에 그 두 사람은 결혼이라는 걸 했단다. 그리고 한국에서 7년, 미국에서 7년, 합이 14년을 함께 하고 있고, 그 동안 두 사람이 네 사람이 되었단다.
14년이라는 세월은 가슴을 뛰게 하거나 얼굴이 화끈거리던 일을 옛일로 만들어 버렸지만, 대신 무던한 일상을 선물하였다는데, 어쩌다 부부싸움이라도 할라치면 무던한 일상이 행복인 것을 알 수 있다나. 꼭 부부싸움을 해 봐야 하냐고 물었더니, 다른 일도 있었단다.
얼마전에 남편이 출장을 갔었는데, 처음에는 홀가분하게 혼자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하고 신이 났었단다. 그런데 몇년만에 처음 떨어져 지내다 보니, 먹어도 먹은 것 같지도 않고, 잠을 자도 선잠이고, 무엇을 해도 어설프고 허전한게 도통 즐겁지가 않더란다. 전화선 너머로 들려오는 남편 목소리에 눈물까지 찔끔거렸다면서 수줍게 웃는다.
14년이라는 세월이 더 지나 28년째가 되어서도 그녀의 눈에 씌어진 콩깍지가 지금처럼 그대로 있을지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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