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옥 <자영업>
그러니까 이 만남은 그리웠던 시절로 되돌아 간 여행이었어.
서울에 사는 남편의 친구가 부인과 함께 다녀갔다. 산호세에 있는 딸을 보러 온 김에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이곳으로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게스트룸을 치우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시장을 봐 오고, 일하는 스케줄을 바꾸고, 메모지에 갈 곳과 같이 할 일들을 적고.......며칠간을 위하여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며 마음이 즐거웠다.
친구의 부인을 가까이 알게 된 건 한참 후의 일이지만, 그 친구는 대학시절 우리가 한참 열애 중일 때 늘 같이 동행했던 단짝이었다. 그 당시 교제하는 여자 친구가 없었던 관계로 우리 셋은 주로 많이 붙어 다녔었다. 탁구장도 같이 가고 전기구이 통닭 집, 영화관, 심지어는 성탄 이브에 그 추운 남산 길도 목도리로 얼굴을 감싸고 셋이서 같이 걸었었으니까.
달랐다. 미국 생활에서 여러 손님들을 맞이하고 대접하며 같이 지내보았지만 이렇게 마음이 편하지 만은 않았었다. 편히 즐기다 가시기를 바라며 맞이하긴 했었어도 24시간을 같이 있어야 하는 불편함이 서서이 느껴지고 시종일관 손발이 되다 보면 은근히 부아가 치 솟아 올라 티 안내고 참아내느라 혼자 애쓰곤 했던 적도 있었는데. 어디 그 뿐인가, 우리가 한국에 갔을 때를 생각해 보게도 된다. 만나자는 장소를 물어물어 지하철 바꿔 타 가며 애써 찾아가면 근사한 저녁 한끼 대접으로 끝나는 게 보통인걸. 우린 그것도 미안해서 쩔쩔매고.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그 연애시절을 더불어 지냈던 친구였기 때문인 것 같다. 마음이 편하고 부담도 없고 아무런 흉허물이 없다. 꼭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도 없고 대화가 없는 공백이 무겁게 느껴지지도 않고. 애써 화장을 해야할 이유도 없고. 그냥 있는 그대로가 넉넉하고 좋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이었다. 남과의 만남에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사회인이 되기 이전의 만남을 만난 것 같다. 화장한 얼굴도 높은 자리도 부와 명예도 모두가 쉽게 만져질 꿈으로 보여지던 그 때. 가진 건 없지만 모든 걸 가질 수 있다고 가슴이 부풀어오르던 그 때. 푸른 하늘과 넓은 대지가 자신을 위해 있다고 믿어졌던 그 때. 너 하나로 나 하나로 세상이 온통 가득 찼던 그 아름다웠던 시절. 이 만남은 그리웠던 시절로 되돌아 간 3박 4일간의 여행이었다. 친구 내외와 터미널에서 헤어지고 돌아서는데 눈앞이 흐리다. 현실이 쭉 손 내밀고 내 앞에 서 있다. 빨리 가야지.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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