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희<공예가>
4월 2일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시계를 맞추어야 한다. 만일 전날 자기 전에 시계를 돌려 놓았다면 , 일요일 아침에 잃어버린 한시간 때문에 허둥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신기한 일은 단지 한시간을 돌려 놓았을 뿐인데, 여름 내내 하루가 길어 진다는 것이다.
하루는 24시간이다. 어제도 24시간이였고, 오늘도 24시간이고, 내일도 24시간일 것이다. 어제는 너무나 한가했었다. 그냥 평상시 매일 하는 일 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는 날이였다. 책을 읽거나 , 구석에 쌓아 놓은 물건을 정리 하거나, 반찬을 만들어 놓거나. 그런데 하루종일 아무 일도 안 했다. 시간이 많다는 생각이 드니까 하기 싫은것은 뒤로 미루고, 하루 종일 빈둥거렸다 . 결국 저녁때가 되어서는 시간에 쫓기어 급하게 허둥대어야 했다.
오늘은 너무 바빴다. 해야 하는 일이 갑자기 너무 늘어 있었다. 그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침에 일어나면서 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 마음이 무거우니 몸도 따라 함께 무거워졌다. 몸이 빠르게 움직여 주질 않으니, 저녁 늦도록까지 일에 쫓겨 다녀야 했다.
어제와 오늘은 내 시간을 누가 훔쳐간 것 같았다. 미하엘 엔데가 지은 모모에 나오는 회색신사들이 내 시간을 가져갔을까. 모모에는 모모와 모모의 친구들과 시간이 등장한다. 모모의 친구들은 회색신사들을 만난 이후에, 대단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사람과 정을 쌓는 시간, 사색을 하는 시간들을 아끼면서 바쁜 사람들이 되어 간다 . 회색 신사들에게 넘어가지 않은 순수한 모모가 호라박사와 거북이의 도움을 받아 회색신사들을 물리치고, 사람들이 예전처럼 행복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다는 어른 동화같은 이야기이다. 갑지기 모모가 생각이 나서 책장이서 꺼내드니 , 책 갈피의 한 귀퉁이를 접어 놓은 페이지가 있다. 펼쳐보니 모모의 청소부 친구인 베포 아저씨의 이야기가 있는 부분이였다.
청소를 할때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다 쓸수 없다는 생각이 들지. 그러면 서두르게 되지. 점점 빨리 서두르지만, 허리를 펴고 앞을 보면 조금도 줄어 들지 않은 것 같아. 그러면 더 불안하고 아득한거야 . 하지만, 도로전체를 한꺼번에 생각하면 안 돼.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그렇게 계속 바로 다음에 할 일만 생각하는거야. 그러면 일을 하는게 즐겁지 , 그게 중요한 거야. 그러면 일을 잘 해 낼 수 있어.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내일도 나에게 24시간이 또 주어질 것이다. 게다가 밝은 해가 떠 있는 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다. 내일부터는 아침에 눈을 떠 하루를 시작할 때 , 베포아저씨를 생각해야겠다. 나의 즐거운 시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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