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선<자영업>
요즘 나온 한국영화중에서 사람이름으로 제목이 붙여진 것들을 볼수가 있다. 친절한 금자씨, 광식이 동생 광태, 그여자 정혜…. 그래서 나도 오늘 제목 하나를 따라 붙여본다. ‘ 내조카 혜진이’ 라고….
내조카 혜진이는 26살, 두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매사에 화내는 법이 없고, 말도 느릿, 행동도 느릿했던 혜진이는 늘 웃고 다니는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 주었던 아이였다. 혜진이가 초등학교 5학년때쯤인가 언니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왔다. 그때부터 혜진이는 조카라기 보담 큰딸이 되어 자랐다. 방과후면 집에다 가방을 던져놓고 하루도 빠짐이 없이 아파트 단지를 뛰어서 우리집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하루종일 집안에서 심심했을 딸아이를 데리고 나가거나, 아들의 기저귀도 갈아주면서 이모인 나를 많이도 도와 주었다. 그러나 한번도 요란하게 한 적이 없이 하얗고 둥근얼굴에 어울리게 매사에 조용한 아이였다. 그런데 어찌된 결혼을 일찍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학교 동갑내기와 결혼한다고 했을땐, 평생 반려자를 만났다는 기쁨보다는 학업을 마치지 못함이 너무나 섭섭하기만 하였다. 나를 많이도 따르더니 학생신분의 남자와 결혼하는 것까지 따라할 줄이야…. 조카사위는 결혼을 하자마자 군대에 입대하였고, 혜진이는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남편도 없이 어린나이에 어른들을 모신다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었을텐데, 이런 나의 안타까움들이 쓸데없는 기우인듯 들려오는 소식들은 늘 씩씩하였다. 국가를 지키는 남편대신 가정을 지키기로 했는지 느릿하고 조용했던 혜진이는 목소리까지 씩씩하게 변해 갔다.
혜진이는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공부도 포기하지 않고 복학을 하더니 졸업을 하였다. 아이를 키우는데 또 얼마나 지혜롭던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우유를 먹일때마다 아빠사진을 먼저 보게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아이눈이 닿는 곳마다 사진들을 붙여놓고 ‘아빠’를 따라하게 했단다. 그런 정성때문인지 아빠와 아들이 처음 상봉하는 순간, 유난이도 낯을 가리던 아이가 아빠에게 얼른 안겼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콧등이 시큰하였었다. 나름대로 마음 고생이 많았을 혜진이에게 이제는 제대한 남편과 아들이 가족이라는 사랑의 버팀목이 되어 지켜주리라. 그동안 고생했다며 분가시켜준 시어른들이 고맙기만 하다. 이렇게 소식만으로 만족해하는 무늬만 할머니인 나는 가끔 혜진이의 홈페이지를 열어보며 웃고 울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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