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열정 불태우며 ‘길 없는 길’을…
김영숙
“계집애가 태권도는 무슨…” 열살소녀 영숙을 보고 사람들은 혀부터 찼다. 어머니의 직업(무속인)을 빗대어 쑤군대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누가 그 어미에 그 딸 아니랄까봐…”
그럴수록 영숙이는 이를 더욱 악물었다. 열정만큼 실력은 쑥쑥 자랐다. 실력만큼 점차 인정을 받으면서 끝없는 여성1호 행렬이 시작됐다. 70년5월 세계최초 여성전용 태권도장 개관(서울). 72년2월 세계최초 여군훈련소 태권교관. 74년 미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칠레 등 순회시범. 75-79년 마포경찰서 여성1호 태권교관. 79년 프레월드게임 한국여자대표팀 감독(79년). 79년7월 한국여자태권도연맹 창설.
79년9월 제1회 전국여자태권도대회를 개최하고 미국으로 태권이민을 결행한 뒤에도 최초의 행렬은 계속됐다. 미태권도연맹 여성분과위원장(80-87년), 제1회 팬아메리칸 태권도대회 미여자대표팀 감독(82년12월), 제2급 국제심판자격 취득(89년4월), 제1회 국제여자오픈태권도대회 주최(00년7월), 세계태권도연맹 여성분위원장(02년6월), 제1회 LA시장배 국제태권도대회 개최(05년4월)….
코뼈를 두차례 수술하고 신경조직이 파괴돼 오른주먹을 제대로 쥐지 못할 정도로 역경을 헤치면서 지난 50년동안 길 없는 길을 뚫어온 예순살의 공인8단 김영숙 관장(남가주 월드태권도스튜디오)에게 세계태권도계는 태권도의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 of Taekwondo)란 칭호를 붙여줬다.
소피아 정
미 대학최강 UC버클리 선수단 주장인 이 스물넷 태권아가씨는 다름아닌 ‘퍼스트 레이디’ 김영숙 관장의 둘째딸이다. 그래서 50년전 김 관장이 들었던 그 말을 듣는다. 속뜻은 정반대다. “역시 그 어머니에 그 딸이야.”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태권도를 익혔다지만 워낙 말이 없고 조신해 태권도와는 영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피아 정(공인4단)은 지난 2월 MIT서 열린 제31회 전미대학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UC버클리가 최근 10연패, 통산 26회 우승을 차지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강순홍
김영숙-소피아 정 모녀가 실력으로 뭉친 대물림 태권여장부인데 반해 강 씨는 태권도 쑥맥이다. 공군 3년동안 배웠는데도 남들 다 따는 초단도 못땄다. 그런데 그에게 태권인생을 열어준 것은 1차이민의 쓰라린 실패였다. 90년대 초 모든 것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되돌아간 그는 재정착에도 애로를 겪었다. “아하 그래 그거야!” 아는 사람의 귀띔으로 태권용품 수출입에 손을 댄 그는 다시 미국으로 날아왔다.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오클랜드에 본사를 둔 태권용품 전문업체 ‘비전USA’는 미올림픽위원회 태권도협회와 4년 독점계약 체결 등 메이저로 굳건히 뿌리내렸다. 연매출 1,000만달러 목표탑이 어른거린다. 한때는 먹고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고민하고 방황하던 처지에서 어느덧 UC버클리 태권도선수단의 든든한 큰손 스폰서가 됐다.
김영숙-소피아 정-강순홍 3인이 또다른 태권인연을 맺었다. 소피아 정 씨가 강 씨의 비전에 취직, 태권도마케팅의 검은띠로 성장하고 있다. 벌써 4개월째다. 본인도 만족, 강 사장과 김 관장도 대만족이다. 셋은 지난 15일 UC오픈 대회장에서 만나 질긴 태권인연을 얘기하며 태권발전에 더욱 힘을 모으기로 다짐했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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