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KCCEB 29주년 기념식…가정폭력근절 등 지속노력 다짐
여성돕기 10만달러 모금착수
김미미-김한도 씨에 공로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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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멋있었다. 번듯한 직업, 꿈같은 미국생활. 그 남자의 청혼은 더욱 감미로웠다. 그 여자는 한껏 두근거렸다.
20일 저녁 오클랜드 아시안문화센터에서 열린 이스트베이한미봉사회(KCCEB, 관장 김헌기) 창립 29주년 기념식의 하이라이트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을 위한 퍼포먼스’는 달콤한 꿈에 젖은 신랑신부 입장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꿈이었다. 악몽이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돼 그 남자는 다른 남자가 되어갔다. 그게 본색이었는지 모른다. 날이면 날마다 고주망태가 돼 폭력을 휘둘렀다. 이유도 걸작이었다. 괜히 때리고 가족한테 전화왔다고 때리고 TV본다고 때리고 친구집으로 피신한 아내를 붙잡아 도망갔다고 또 때리고….
도대체 미국물을 먹었는지 안먹었는지 “여자는 잘못이 없어도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등 한국에서도 거의 사라진 고리타분한 말로 폭력을 정당화했다. 임신도 폭력의 방패막은 되지 못했다. 결국 유산. 그 여자를 기다린 건 돈을 벌어오라는 손찌검. 영주권도 없고 영어도 서툰 그 여자에게 탈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울부짖었다.
“나는 거미줄에 걸린 파리, 거미가 원하면 언제든지 잡아먹히는 파리인가.”
KCCEB와 아시안여성쉘터(AWS)가 합작으로 만든 베이지역 최초 재미한국인 가정폭력프로그램 ‘쉼터’(2000년5월 개설) 알리기 일환인 이날 퍼포먼스는 그러나 종국에는 절망을 희망으로, 체념을 의욕으로 뒤바꾸며 끝났다. “더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우렁찬 화답박수 속에 이도희(신부)-지미 비알라(신랑) 콤비의 공연이 끝난 뒤 약 250명의 참석자들은 진행자 조이스 정 씨(쉼터 자원봉사자)의 “우리의 작은 정성과 노력들이 아까 보신 여성들을 돕는다고 생각할 때 가슴이 뛰지 않으십니까”라는 호소에 즉석 기부(약속분 포함 비공식집계 1만여달러)로 메아리를 울렸다. SF총영사관 이대동창회 등은 쉼터의 ‘10만달러 모금 06플랜’에 각각 1,000달러씩 내놓기로 했다.
여느 단체 기념식과 달리 뜻깊은 퍼포먼스로 공명을 얻은 이날 행사에서 김헌기 관장은 KCCEB 29년을 회고하며 “우리는 앞으로도 혁신적이고 효과적인 봉사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여러분과 친구가족 후원자들 동료들이 우리와 함께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웰스파고은행 직원으로 한인자영업자 돕기 등에 헌신해온 김한도 KCCEB이사와 아태계 가정폭력 대책위 운영위원으로 쉼터의 창립멤버인 김미미 씨에게는 각각 공로패가 증정됐다. <정태수 기자>
사진/ 20일 열린 KCCEB 창립 29년 기념식에서 이도희 씨가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의 절규를 춤으로 포현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이날 공로패를 받은 김미미 씨(왼쪽)와 김한도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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