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정 <한국학교 교사>
지난해는 시부모님의 금혼년이었다. 그러니까 부부의 연을 맺고 사신 지가 어언 50년이 되었다는 얘긴데, 생판 남인 두 사람이 만나 반세기의 시간을 어찌됐건 함께 살아 왔다는건 가히 기념할 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라는 결혼 서약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이 구절이 이미 우리에게 식상해져 버린 요즘 세상에 ‘함께 오십년’ 이란 건 서약을 충실히 지킨 자로서 확실히 훈장감이다. 피치 못한 경우는 제외하더라도, 이혼이란걸 사귀다 수틀리면 헤어지는 정도로 그닥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요즘 추세이다보니 그 공유의 햇수가 한결 귀할 따름이다.
나 어릴적, 부모님이 허구한 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시니 중간에 끼여 새우등 터지는건 자식들인지라 그 지긋지긋함에 저렇게 살 바에야 나같으면 안 살아 버린다고 흰소리를 탕탕치곤 했다. 부부지간에 하루를 살아도 뜨겁고 우아하게 사는게 사는거지 지지고 볶아치며 사는건 사는게 아니라고 부모님 앞에서 오만 시건방을 다 떨기도 했었다. 그런 내게 엄마는 구지 당신의 삶을 변명하며 나의 이해를 구하지 않으셨다. 나의 엄마도 내 나이시절, 당신의 엄마에게 이미 해 본 장단이셨을테고, 당신도 살다보니 별 수 없이 인생이란게 당신이 꿈꿔왔던 연분홍빛 이상과는 다분히 멀어질 수도 있다는걸 삶으로 부대끼며 깨달으셨을 터였다. 그 깨달음이란건 한창 연분홍 꿈에 동동 떠다니는 어린 계집애에겐 택도 없는 일이란걸 엄마는 알고 계셨으리라. 그러하기에 내가 결혼생활의 대선배이신 엄마 앞에서 침 팍팍 튀기며 결혼관을 감히 씨부렁거렸을 때 엄마가 피식 웃으시며 하신 말씀은 오로지 “너도 살아봐..” 이 한 말씀이셨다.
그런 내가 지금 살아보고 있다.
나같이 시건방을 떠는 딸이 내게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너도 함 살아봐..’ 라고 말해 줄 딸년이 없어서 은근히 섭섭해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자리에 가보지 않고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 삶의 맛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인생일진대 어쩌자고 아직 삶이란 것에 입문도 하기 전에 이미 다 찍어 맛본 듯 오만방자를 떨었을까.
함께 살아가는 장미빛 하루도 중요하지만 가시밭길 백일도 그 못지 않게 소중한 시간들임을 요즘에야 깨닫는다면 철이 빨리 드는걸까 더디 드는걸까.
부부란, 때로 투박한 사랑을 하기도, 치열한 사랑을 하다가 감미로운 사랑에 빠지기도, 거칠고 무식한 사랑이다가 느닷없이 고상한 사랑을 하기도 한다. 참으로 가지각색 이름의 사랑이지만 그 모든 것이 사랑이 아닌 것이 아니다. 교묘히 변장한 사랑의 다른 모습일뿐.
그러하기에 난 쉽게 포기할 수 없다. 변장한 그것의 온전한 모습을 볼 때까지는 함부로 놓아버릴 수 없는게 바로 부부의 삶이란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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