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수필가, 환경엔지니어)
주희야. 이제 막 들어간 대학 공부가 힘들지? 방과 후, 매일 예닐곱 시간씩 인근 동물농장에 가서 실험도 돕고 힘든 잡역도 하면서 학비를 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엊저녁, 어느 연속극 얘기를 듣다가 문득 네 생각이 났는데 네 착한 마음을 떠올리는 멋진 제목 탓인 듯 하다.‘넌 어느 별에서 왔니?’
너를 처음 안게 4년쯤 전이던가? 요세미티 문학수련회에 오신 네 어머니가 글 나눔 시간에 우리들에게 네 편지를 읽어주었었지. 중학생 꼬마였던 네가 엄마에게 보낸 편지. 당시 많이 쇠약했던 엄마를 쉬게 하느라 네가 엄마 등을 떼밀어 보냈다고 했다. 책 사보시라고 편지 속에 20불 두 장까지 꼬깃꼬깃 접어 넣어서. ‘미국 와서 하루도 쉴 틈 없이 일만 하신 우리 엄마. 모처럼 자연 속에 묻혀 문학의 향기에 흠뻑 취해보세요’
그 뒤, 여러 가족들이 함께 만났던 어느 선교 모임에서, 아프리카 원주민들과 십 수년 함께 살다 떠나신 고(故) 조 현진 선교사님 이야기를 했었다. 주희야. 세상엔 힘들어도 올곧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지? 선교사님은 적도의 강한 자외선 때문에 거의 실명을 하시고도 매일 노방전도를 나가셨다지. 결국 풍토병을 견뎌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오십을 겨우 넘긴 나이에.
너와 동갑인 딸 아라가 항상 도와주어서 생전에 선교사님은 늘 행복해하셨다는데... 원주민 말을 배워 통역도 하고, 혼자 악기도 익혀 예배반주는 물론, 아빠 전도 자전거 운전까지 도맡았었다고 한다. 충격 속에 몸져누운 엄마에게 아라는 이렇게 위로했다지. ‘아빠는 평소 선교사의 가장 영광된 길은 순교(殉敎)라고 하셨어요. 충성되게 할 일을 다하고 천국 가신 아빠의 삶을 우리 기념하고 감사해요’
모임이 끝난 며칠 후, 주희 네가 선교사님 가족께 전할 게 있다며 나를 찾아왔다. 네가 조심스레 건네준 두툼한 봉투를 열어보곤 나는 깜짝 놀랐다. 위로 편지와 함께 백불 짜리 지전이 14장이나 들어있었는데, 네가 수년 간 모은 전 재산임을 금새 알 수 있었다. 말리는 나를 너는 오히려 이렇게 설득했지. ‘기도하고 엄마와 상의한 뒤 결정했어요. 선교사님 가족을 위해 제 마음을 드리니 이렇게 기쁘고 벅차요’
주희야, ‘거룩한 부담감’이란 말을 들어보았니?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옳은 일을 회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지금 내가 실천해야한다는 성숙한 책임감. 가슴 깊은데서 우러나는 사랑의 음성에 순종하고 전 재산을 내어놓은 네 믿음을 보고 어른인 내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네 귀한 마음이 선교사님 가족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남편을 여읜 충격 속에 암 선고까지 받았던 사모님이 병석을 박차고 나미비아 남편의 사역지로 돌아가 지금 고아들을 돌보며 살고 계신 소식 너도 잘 알지? 네 사랑의 편지를 받고 하늘의 음성으로 확신했었다고 간증하셨다. 아라도 훗날 미국에 오면 너를 꼭 만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주희야, 조물주께서 네게 주신 많은 탈란트를 감사하고 있지? 네가 고등학교 때 수중발레 미 전국 챔피언이었다는 사실은 지금도 우리 교포사회의 큰 자랑으로 남아있다. 전국에서 몰려온 수백 명 쟁쟁하고 부유한 미국 여학생 선수들을 물리치고 따낸 개인전 우승은 물론, 너로 인해 학교단체전 우승까지 거둬냈으니 참 대단한 성과였다. 그런데 나는 네가 어떻게 이뤄 냈느냐가 더욱 자랑스럽다. 조그만 아파트 풀장에서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엄마와 둘이서 훈련교본을 보며 몇 년을 피나게 연습했다는 이야기는 내 마음에 한편의 동화처럼 남아있다.
주희야. 가정 형편으로 수중발레를 포기해야 했을 때 많이 아팠지? 그러나 그 역경을 딛고 이제 대학에서 새 미래를 준비하는 네게 힘찬 기도의 성원을 보낸다. 네가 이름 모를 작은 별에서 왔지만, 앞으로 어느 별보다 밝게 빛날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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