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정<한국학교 교사>
우리집 둘째 녀석(8살)이 한동안 S라는 친구와 죽고 못살더니만 어쩐일인지 며칠 전부터S를 슬슬 피하는게 느껴졌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책가방 던져놓기가 무섭게 후다닥 나가설랑 몇시간이고 의기투합해 돌아다니던 두녀석이었는데 말이다. S가 전화를 해도 그저 시큰둥, 찾아와도 마지못해 놀아주는 척, 이쯤되면 S쪽에서 자존심 상해 관둘만도 하건만, 어떻게 된게 피할수록 S는 더 집요하게 녀석을 찾는 것이다. 놀기 싫으면 그냥 싫다하면 될일을 마음 약한 녀석이 자기가 직접 대놓고 친구에게 하지 못하는 말을 엄마가 대신 하라며 구원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엄마, 나 S하고 놀기 싫어. 그러니까 엄마가 얘기해./ 왜? 싸웠어? / 아니, 그냥 힘들어. /
그럼 니가 말해, 지금은 피곤하니까 놀기 싫다구. / 그런데, 말해도 걘 내말 안들어.
그 순간 S가 또 쾅쾅 대문을 두드리고 , 둘째 녀석 오만상을 찌푸리며 “오, 마이 갇!”
듣자하니 S가 녀석에게 잘못한 것이라곤 없었다. 단지 너무나 집요하게 친함을 요구하며 밀어부친 것이 녀석을 지치게 한 모양이다. 친구가 너무 좋은 나머지, 때론 친구가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은 S의 이른바 친밀 강요죄(?)가 바로 그 원인이었다.
비록 아이들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정도와 상황만 다를 뿐 아마도 보편적인 인간관계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특히나 가깝다고 하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말이다. 친밀함을 담보로 지나치게 상대방을 자기에게 맞추려하고,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감을 깨닫지 못할 때가 있다. 그리고는 어쩌다 상대방이 불편해 하는 기미라도 보일라치면 그의 애정 식음을 탓하며 변했느니 어쨌느니, 바로 넉두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는 그저 잠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뿐인데 말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존 그레이는, 남자에겐 그만의 동굴이 있어 때론 거기 들어가 있길 원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남자뿐이겠는가. 누구나 저마다의 동굴은 있다. 그곳은 어느 누구와도 함께 들어갈 수 없는 절대 배타적 공간이다. 우리는 그 곳에서 내적인 쉼을 얻고 에너지를 충전한다. 그것도 기다리지 못해, 그 동굴에마저 함께 들어가자고 막무가내로 엉겨붙는다면, 그 관계는 정말이지 깨지기 십상이다.
며칠 그렇게 혼자 뒹글더니만 다시 S가 그리운 모양이다. 전화를 하니 마음좋고 넉살좋은 S가 단박에 눈썹을 휘날리며 달려온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관계의 마지노선이라는게 있다는걸 깨닫기엔 S는 너무 어린걸까? 까탈스런 친구를 기다려준 S가 어쨋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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