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방, 흠집내기, 인신 공격, 흑색 선전, 폭로전 … 한국에서 선거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지난 5.31 선거도 예외가 아니었다. 후보들이 자신의 정견이나 자질을 내세워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면 좋으련만 선거전 중반쯤 가면 으레 상대 후보를 깎아 내림으로써 표를 얻으려는 네가티브 캠페인이 등장한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덜 성숙해서 그렇다는 일부 비판도 있지만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모델이라 는 미국도 다르지 않다. 사람의 심리가 다 거기에서 거기라서, 점잖게 정도를 따라 가는 캠페인보다는 ‘저 후보는 이래서 안돼’‘저 후보가 그랬다더군’식의 흠집내기가 유권자들의 기억에 쏙쏙 더 잘 들어간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비방 선거전의 역사를 꼽으라면 179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대 대통령 선거 당시 존 애담스가 막강한 토마스 제퍼슨을 가까스로 물리치고 대통령 자리를 얻었는데 상당부분 비방선거전의 효과였다는 설이다. TV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애담스 선거진영은 제퍼슨의 됨됨이를 미주알고주알 험담하는 삐라를 만들어 돌렸다고 한다.
이후 상대 후보 비방 캠페인은 미국 선거역사의 전통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면면히 이어져왔다. 그런데 문제는 정도가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다. 지난 60년대를 정점으로 점점 떨어지는 투표율 하락을 비방선거전에 돌리는 분석도 있다. 후보들 간 흑색선전, 비방 광고가 너무 심해지면서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가 퍼지고, 이것이 유권자들의 무관심, 낮은 투표율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6일 캘리포니아 예비선거도 후보들의 열띤 캠페인에 비하면 한심할 정도로 투표율이 낮게 드러났다. 엄청난 선거기금을 쏟아 부으며 발이 부르트게 선거구를 휘젓고 다닌 후보들로서는 투표하는 성의도 안 보이는 유권자들에게 배신감이 느껴질 것 같다.
삐라로 상대 후보를 흠집 내던 애덤스 시절과 달리 현대의 네가티브 캠페인은 재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또 다른 문제이다. TV, 인터넷 등 첨단 미디어들을 이용한 캠페인은 기본적으로 돈을 물 쓰듯 해야 하는 ‘물량’공세이다. 맞서 싸울 만한 ‘총알’이 없으면 감히 선거에 나갈 엄두를 못내는 것이 요즘 선거 풍토이다.
이번 민주당 주지사 후보전을 예로 들면 스티브 웨슬리 후보는 3,400만달러 이상을 캠페인 비용으로 쏟아부었는데 모두 혼자 부담했다. 그만큼 돈이 많은 재력가이다. 필 앤젤리데스는 그만한 부자는 아니지만 큰 손 친구가 900만 달러를 선뜻 기부해서 맞서 싸울 수가 있었다. 뭔가 바라는 게 있지 않고야 누가 그렇게 큰돈을 내겠느냐는 것이 앤젤리데스를 비방하던 웨슬리 진영의 네가티브 캠페인 내용 중 하나.
돈을 태산처럼 쌓아두고 상대방 흠집내느라 물 쓰듯 쓰는 것이 요즘 선거전이라는 비판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서민들 사정 이해하고, 서민들 이해 챙기는 서민적 정치인은 멸종 위기에 처한 걸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