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숙<방송인>
마흔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 확실하게 느껴지는 변화가 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일단 피부에 긴장감이 사라져 버렸단 것이고 정신적으로는 일반적 생활의 의욕 감소입니다. 이삼십대에 가졌던 통통거리는 탄력 대신 바람이 새어 나가면서 생겨나는 잔잔한 주글거림이 눈가와 입가에 어려있음을 스스로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뿌리 끝으로 솟아 나오는 머리카락은 이제 본연의 색깔을 잊고 망측하게 하얀색으로 구별을 짓습니다. 영양크림에 머리염색에, 할 수 있는 치료를 억지를 쓰면서 해 봅니다만 그 때마다 찾아오는 허탈함은 감출 길이 없는 겁니다. 어느새 세월이 이만큼 흘러 버린 걸까요. 지난 해 말, 서울에서 큰 행사 사회를 맡아 프로그램에 낼 사진을 찍었는데 남편이 하는 말, 자기도 이제 별 수 없이 늙어가는 군, 이었습니다. 딸 아이도 하는 말이. 엄마, 그냥 보면 환상적인데 렌즈로 보면 다른 사람이에요. 겨우 한 컷을 준비하기 위해 수많은 사진을 찍어대고 용을 쓰면서 뱉은 말은, 그래도 아직 나 좋아하는 사람들 많아 뭐, 였습니다. 우습다 느껴지시죠? 여자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 공연한 투정을 부리고 있는 거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여자인걸요.
아이들 치다꺼리와 바쁜 생활에의 핑계로 단순함을 사랑하듯 기존의 법칙에만 충실하며 살았습니다. 이게 행복이겠거니 하면서요. 어느 날, 새로운 의욕과 성취동기 없이 하루를 그리고 일 주일과 한 달을 보내고 있음을 깨닫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내가 사라져 버렸단 생각이 갑자기 가슴을 치면서 들어왔고, 가족을 소중히 여기지만 그 안에 있는 자아 역시 의식 속에서 배제될 순 없음을 인정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잠자리에 들고 난 후, 늦은 밤 혼자 불 밝히는 즐거움을 다시 시작한 지 이제 다섯달이 지났습니다. 글도 쓰고 외국어 공부도 다시 시작했고, 무엇보다 지적 허영심이 아닌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이 너무 커서 공부하며 살아가는 재미와 즐거움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음은 지금 이 나이에 찾은 행복입니다. 가까운 친구 하나가 며칠 전에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아이 넷을 키우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삶에의 열심에 감동이 되었고 신앙으로 열매를 맺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거란 고백에 따뜻한 사랑을 느꼈습니다.
나이를 헤아리며 놀라는 일을 그만 둘 까 합니다. 인생길 가는 여정에 작은 행복을 찾아 누리면서 감사할 수 있고 나름대로의 열매를 확인하고 있음에 더 바랄 것이 있을까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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