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월드컵 예선전 첫 승리를 거뒀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경기가 끝난 한국에서는 새벽까지 “대∼한민국” 외치며 응원 뒤풀이를 하느라 밤잠을 건너뛰었고, 새벽 6시에 경기가 시작된 남가주에서는 집집마다 TV 앞으로, 한인타운 단체 응원장으로 모이느라 새벽잠을 반납했다.
한국이 토고를 제압하자 가장 보편적인 반응은 ‘안도’였다. “일단 체면은 세웠다”는 것이다. 다음 반응은 ‘열광’- 후반전에서 역전골이 터지자 “너무 흥분해서 이웃 사람들 다 깨우는 게 아닌가 싶게 소리를 질렀다”는 흥분파들이다.
세 번째 반응은 ‘개운치 않다’는 것. 후반전에서 토고 선수 10명과 싸우면서도 한국이 다득점을 못한 걸 보면 선수들 실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경기를 보는 시각이 어떠하든 일단 승리는 기쁨이고 우리 모두에게 엔돌핀을 듬뿍 주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스포츠가 갖는 엄청난 가치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월드컵이 또 다른 보너스를 안겨 주는 것 같다. 월드컵의 부가가치이다.
남가주의 한 주부는 13일 아침 한국-토고 전이 끝난 직후 북가주 대학에 가 있는 딸의 전화를 받았다. “한국 경기를 보았다. 한국 선수들이 잘 싸워서 정말 기분이 좋다”는 내용이었다.
“딸이 그 새벽에 일어나서 경기를 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4년전 월드컵 당시 집에서 온 식구가 경기를 보며 같이 흥분하던 추억 때문인 것 같아요”
밸리의 한 가정에서는 대학 1년생 딸과 아버지가 한국 경기 응원을 위해 새벽 5시부터 일어났다. 그 새벽에 부녀는 빨간 T셔츠에 머리띠, 응원용 도구까지 준비한 후 열렬히 응원하며 경기를 시청했다. 수천명이 모인 한인타운 단체 응원장에도 부모들과 함께 참석한 2세들의 모습은 많이 눈에 띄었다.
“대∼한민국”을 외치며 열띠게 응원하는 한인들, 열심히 싸워 승리를 거둬내는 한국 선수들 - 그 열광의 도가니에서 우리 2세들이 얻는 것이 있다고 본다. 민족적 정체성, 그리고 민족적 자부심이다.
미국에서 자라는 우리 2세들이 한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기는 객관적으로 쉽지 않다. 지난 달말 발표된 국가별 민족 자부심 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과 미국은 자부심 면에서 하늘과 땅이다. 시카고 대학의 톰 스미스 교수가 2003-2004년 33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였다.
이 결과에 의하면 미국민들의 일반적 자부심은 2위(1위는 베네수엘라), 과학 기술·예술·스포츠·정치적 영향력 등 특정 영역별 자부심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반면 한국은 일반적 자부심에서 19위, 영역별 자부심에서는 30위를 차지했다.
미국 사회에서 소수계 중의 소수계인 한인들의 민족적 자부심도 한국의 자부심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우리 2세들에게 한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주려면 계기가 필요하다. 고맙게도 월드컵이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 2002년에 이어 이번에도 한국팀들이 선전해서 우리 2세들에게 자부심을 듬뿍 심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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