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숙 <방송인>
아침결에 운동 삼아 다녀오기에 적당한 산이 집 근처에 있습니다. 사실은 우연이 이 산책길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헬스클럽에 가는 것과 달리 우선은 돈이 안 든다는 것과 우거진 수풀 사이로 홀연히 다른 세상에 들어선 느낌을 언제라도 원할 때마다 바로 지척에서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다람쥐며 산토끼도 만날 수 있고 산새들도 여러 모양과 색깔을 가지고 날라 다닙니다. 지난 봄에 엄청 내린 비로 인해 한동안 운동을 미루었다가 다시 찾은 산속 길은 풀들이 흐드러지게 올라와 있었습니다. 비밀스러운 길을 따라 걷는 재미도 솔찮습니다. 지난 주일엔 거추장스러울 만큼 자라난 풀들을 누군가가 다듬어 놓았더군요. 누군가의 수고가 다른 많은 이들의 편함을 불러오고 또 잘려나간 풀들은 그 자리에서 말라져 토양에 거름이 될 테고, 그러면 다시 산은 풍성하게 계절을 따라 빛깔 좋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할 겁니다. 보이지 않게 서로 도움을 주고 생명을 함께 나누며 사는 인생임을 다시 새겨봅니다.
고난이 없으면 성숙함이 어찌 가능할까요. 인생사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있듯이 사람이 사는데 고통과 어려움이 없다면 좋은 날 맞이했을 때 그 감격을 가슴으로 누릴 수 있겠나 싶습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물론 가지 않았던 길에의 미련이나 아쉬움은 있게 마련이나 현재 가진 형편과 처지를 한탄하기 보다는 지금을 있게 한 섭리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함이 마땅하지 않겠나 하는 겁니다. 한창 높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친밀감 있게 언니라 부르도록 허락하는 제 시누님은 요즘 한창 책과의 사랑에 빠지셨는데 그분이 하시는 말, 젊었을 때 왜 그다지 책과 공부를 소홀히 했던가 아쉽다는 겁니다. 미술 작품에의 심미적 감각, 음악을 가슴으로 듣는 성숙함, 인간관계에의 따뜻한 애정이 세월 갈피에 끼워진 고난의 시간이 없다면 가능 했겠느냐는 거지요.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처를 주고받기 쉽고 그로 인한 갈등이 증폭되면 삶이 한층 메마를 수 있건만 늘 웃음을 잃지 않고 감당하시는 언니께 많은 것을 배웁니다. 나이 어려 철없는 막내 올케를 예뻐할 수만은 없었을 텐데 그나마 동생과 함께 살며 자식을 낳아 키우는 까닭에 용납했을 겁니다. 이제는 현재 열심으로 사는 모양을 가히 여겨 당신의 인생을 나누고자 하는 그 분께 감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삶 속에서 고난을 앞세워 강하게 설 수 있음을 공유하면서 말입니다.
작년에 심었던 라일락 나무가 메말라 죽은 줄로 알았었는데 올해 보니 잎을 내고 급기야는 보라색 떨기꽃까지 피웠습니다. 생명은 그렇게 강한 구석이 있는 거라니까요,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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