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프랑스월드컵. 물오른 득점기계 호나우도를 앞세우고 2연패를 장담하던 브라질의 첫 상대는 노르웨이였습니다. 노르웨이 선수들에겐 공격 수비 가릴 것 없이 호나우도 봉쇄특명이 내려졌습니다. 그 중대한 일전을 앞두고, 다름아닌 노르웨이의 어느 열성팬이 공개리에 외쳤습니다. 노르웨이 승리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용서받지 못할 반칙으로 호나우도의 멋진 플레이를 감상할 권리를 앗아간다면 노르웨이팀을 저주할 것이라는 엄포였습니다. 노르웨이팬이기에 앞서 국경없는 축구팬으로서의 권리선언이었습니다. 94년 미국월드컵 때 자책골을 넣은 콜롬비아 수비수 안드레아스가 귀국 뒤 총격피살된 사건에 견줘본다면 노르웨이 그 사람은 목숨을 건 소신발언을 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꼭 남 얘기만 할 게 아닙니다. 만일 그가 한국인이었다면, 그리고 엊그제 프랑스전을 앞두고 지단이나 앙리를 실력이 아니라 반칙으로 월드컵 무대에서 졸업(?)시켜버린다면 “대-한미국”을 저주하겠다고 했다면?
02년 한일월드컵. 한국의 8강전 상대 스페인에게는 비원이 있(었)습니다. 축구열기나 평소실력은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데 월드컵에서는 곧잘 죽을 쒀 4강맛 한번 못봤습니다. 그 한을 씻으려고 단단히 벼른 스페인 선수들은 그날 정말 ‘무적함대’처럼 펄펄 날았습니다. 다만 골이 없었습니다. 하긴 2번이나 있었습니다. 하나는 애매한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또 하나는 크로스직전 볼이 골라인에 닿지도 않았는데 골라인을 넘었다며 아웃이 선언되는 바람에 날아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문제가 된 것은 산체스 감독이 세계적 해결사 라울 곤잘레스를 끝내 출전시키지 않은 것입니다. 가벼운 허벅지 부상(햄스트링 이상)인데도 연장전까지 끝내 벤치에 앉혀 승부차기 패배뒤 스페인 언론과 팬들로부터 엄청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산체스 감독은 당당했습니다. “축구는 오늘만 하는 게 아니다.”
06년 독일월드컵. 지난 17일 벌어진 미국-이탈리아전은 그야말로 전투였습니다. 특히 전력열세에다 2명이 퇴장당한 숫적 열세를 딛고 사투를 벌인 팀USA의 투혼은 놀라웠습니다. 게다가 이탈리아 골네트 안쪽을 후빈 비슬리의 골(후반 19분)이 무효로 처리되 그나마 드문 미국축구팬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날 미국중계팀의 반응이었습니다. 골 순간, 흥분돼 “골!”이라고 소리친 것까지는 한국중계팀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나 슬로모션 리플레이를 보면서 비슬리의 슈팅순간 맥브라이드가 이탈리아 수비라인과 골키퍼 사이에 있었던 장면을 보더니 금방 흥분을 가라앉히고 “(맥브라이드가 볼을 터치하지 않아) 그 당시 플레이에 참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그러면 오프사이드룰의 적용을 받지 않음) 실은 골키퍼의 시야를 방해했으므로 경기에 참여한 것”이라며 “라인스맨(선심)과 레퍼리(주심)이 매우 훌륭한 판정을 내렸다”고 칭찬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미 중계팀은 이탈리아의 거듭된 비신사적 행위를 비판할 때는 비판하면서도 멋진 플레이에는 마치 제3자인 것처럼 아낌없이 칭찬하는 등 객관성을 거의 잃지 않았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그렇게 억울한(억울하게 보이는) 중대매치에서 만일 한국중계팀이 그랬다면? 한껏 달아오른 태극전사 응원열기는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한번쯤은 우리 모두 다같이 생각해볼 일입니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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