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희<공예가>
아버지라고 불러 본적이 없어서 제목을 쓰고 보니 무척 낯설다. 아빠. 어려서나, 커서 아이엄마가 되어서도 이렇게 불렀었다. 아빠.
아빠에 대한 제일 오래된 기억은 아빠 자전거 뒤에 타고, 추운 겨울날 스케이트를 배우러 가던 작은 소녀때 인 것 같다. 아빠와 누나가 무엇을 하러 가는지 궁금했던 동생은 같이 가자고 졸라대며 따라 나서려고 했고, 나는 아빠와 둘이서, 엄마가 동생을 데리고 방에 들어간 사이, 몰래 몰래 자전거를 몰고 대문밖으로 나왔었다. 넘어지지 않을려면 허리를 곧게 펴서 어정어정 타면 안 되다고 하셨었다. 그래서 아빠 말씀대로 꼭 허리를 굽히고 스케이트를 탔다.
아빠는 과학선생님이셨다. 그래서 아빠에게 저녁마다 특별과외를 받을 수 있었다. 중요한 것에 줄 쳐 주시고,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었다. 그런데 난 가끔 졸았다. 왜냐하면 우리 아빠 목소리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끔 조근조근 말씀하시는 아빠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밤이면 둑방에 데리고 나가 별자리를 가르쳐 주셨다. 지금도 밤하늘에서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 오리온자리등은 한 눈에 찾을 수 있다. 나는 과학 경시대회나 발명대회에서 상을 무척 많이 탔다. 그래서 창의성이 풍부한 학생이라고 칭찬도 참 많이 받았었다. 그런데 실은 뒤에 항상 아빠가 계셨다. 그러니까 창의성이 풍부한 사람은 바로 우리 아빠였다.
아빠는 정말 글씨를 잘 쓰셨다. 그리고 매우 꼼꼼하게 만들기도 잘 하셨다. 그 재주를 내 동생이 그대로 이어받아 손재주가 무척 좋다. 난 가끔 우스게 소리로 ‘참으로 불공평하게도 아빠와 엄마의 손재주를 동생 혼자 다 가져갔나보다’ 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의 내 이름 아래에 ‘공예가’ 라고 붙어 있는 것을 보면 나도 아빠의 손재주를 조금은 이어 받았나보다.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 부터는 항상 잘 한다고 칭찬해 주셨다. 작은 일이라도 크게 박수쳐 주시고, 기뻐해 주셨다. 아빠의 칭찬은 나에게 큰 기쁨이 되고, 또한 큰 힘이 되었다.
항상 괜찬다, 괜찬다, 만 하시다 얼굴도 제대로 못 뵈었는데 가버리셨지만, 그리고 시간이 많이도 지나가버렸지만, 나는 아빠를 보내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매일 매일 아빠와 이야기를 나눈다. 아침이면 ‘안녕히 주무셨어요.’ 인사를 하고 , 저녁이면 ‘안녕히 주무세요. ‘ 하고 인사를 드린다. 아직도 아빠에게 꾸중을 듣기도 하고, 또 전과 다름없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칭찬해 주시기도 한다.
이렇게 항상 아빠와 함께 있는데도, 가끔은 아빠가 사무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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