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숙<방송인>
한때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 몹시 화가 나고 할수만 있다면 남자로 태어났기를 바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만이 아닌 이곳 미국땅에서 조차 여자라는 이유로 눈에 보이지 않는 불평등한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요. 굳이 여자는 이렇게 살아야한다는 명제가 지금 세대에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여자이기 때문에라는 조건절이 따라붙는 경우가 다반사인데요. 그러나 여자이기 때문에 누리는 행복을 난 요즘 경험하며 삽니다.
꼬박 십년을 아이를 낳기위한 노력을 했고 어렵사리 기적처럼 아이를 가졌을때 당연히 아들이라고 이율배반적인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한 나는 딸을 먼저 낳았습니다. 그때의 심정은 이 아이도 나처럼 힘든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 하겠단 아픔이었습니다. 육체의 아픔이 정신적 아픔에 비할 수 있을까만은 그래도 살이 찢어지며 생명을 생산해내는 과정은 남자들이 상상조차 못할 겁니다. 아픔과 동시 여자로서 누리는 기쁨이 이어졌는데 그것은 젖을 먹이면서 살이 포동하니 오르는 작은 생명을 지켜보는 가운데 누렸던 성취감이었습니다. 여자가 아니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엄마로서 딸에게 나는 당당할 것을 먼저 가르칩니다. 할 수 있는 일에 자신을 가지고 도전할 것을 가르치고 동시에 섬세한 마음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열정을 쏟을 것도 가르칩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육체의 힘이 부치다고 생각지 말것과 끈질기게 인내하는 것이 삶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기본임을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한편 사춘기에 들어서 나타날 여성의 징후에 대해 최대한 누리고 가꿀것을 부탁합니다. 무조건 남자들과의 경쟁으로 미적 감각에의 무지나 무시를 배제하려는 겁니다. 내가 그랬거든요. 또래의 여자애들이 보이는 외적 치장에의 관심과 몰두에 눈을 내리깔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왜 굳이 여자가 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을 무시하려 했는 지 모를 일입니다만. 그러나 요즘 난 여자로 태어났음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로 차갑게 사는 일 뿐만이 아닌 몸으로 나를 가꾸는 일에 역시 관심을 갖고, 가능한 한 아름답고 예쁜 모습으로 살고 싶어졌다는 겁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얘기일까요. 아니, 이제 조금씩 산다는 게 여자 남자의 대립이 아닌 자연인으로서의 타고난 속성에 순응하면서 누림에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지요.
지난 주말, 이화 챔버콰이어 연주회를 다녀왔는데 훌륭한 노래만이 아닌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젊은 여성 음악인들의 모습에 감탄을 하고 왔습니다. 바이올린 역시 막 피어나는 소녀 음악인에 의한 한기량 떨쳐진 연주여서 미와 재능이 겸비된 여성들의 잔치였다고나 할까요. 아뭏든 난 요즘 여자로 태어났음이 하나도 불만일 이유가 없다는 걸 스스로에게 주지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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