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수필가, 환경엔지니어)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류시화 - 소금)
바다가 아프다. 언제부턴가 바닷가 벼랑 끝에 서면, 어머니 같은 바다 속 깊은데서 길고 아픈 신음소리가 들린다. 연안마다 바다가 붉은 빛으로 썩어가고, 좌초된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시커먼 띠 띄고 유령처럼 바다를 떠돌아다닌다. 치우고 또 치워도 하얗게 바다위로 떠오르는 물고기들, 기름을 뒤집어 쓴 채 자갈밭에서 꺼억꺼억 우는 갈매기, 또 온몸에 기름투성이가 되어 해안으로 밀려온 아기고래의 죽음.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바다도 썩을 수 있고, 병들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미처 몰랐었다. 마치 어머니도 병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그녀의 무한한 사랑과 인내만 믿고 마음대로 행패 부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를 잃은 못난 불효자식들처럼, 우리는 검게 썩어 가는 바다 앞에서 떨고있다.
공해가 점점 심해지면서 언제부턴가 바다의 체질(體質)마저 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여파로 바닷물이 점점 산성(酸性)화 되어간다. 해양학자들은 지난 65만년 동안 바다에 일어난 변화 중 가장 심각한 현상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바다는 약간 알칼리성을 띄어야 건강하다. 왜냐하면 알칼리성을 나타내는 칼보네이트 이온이 칼슘과 결합하여 바다생물에게 중요한 각질(角質)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알칼리성 바다에서 조개는 단단한 조개껍질을 만들고, 새우 플랑크톤도 뼈대를 갖추며 건강하게 자란다. 또한 바다 밑에선 탄산칼슘을 원료로 산호초가 번성하면서 온갖 물고기들이 보금자리를 만들게된다.
그러나 오늘도 지구 방방곡곡의 화력발전소와 공장 굴뚝에선 수천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방출되고 있다. 이 가스는 하늘로 올라가 지구를 덥게 하고 바닷물에 녹아 물을 산화시킨다. 매년 무려 20억 톤의 이산화탄소가 바닷물에 용해되고 있다고 한다. 아황산가스가 비에 섞여 내리는 산성비도 바다의 산도를 높이는데 한몫하고 있다.
수질 변화에 가장 민감한 생물이 플랑크톤이다. 그 결과 플랑크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올해 캘리포니아 연안어장이 최악의 흉어가 된 이유가 플랑크톤의 고갈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로 해류의 흐름에 이상이 생겨 바다 위아래 양분이 골고루 섞이질 않는데다가 산성화까지 겹치니 바다의 아픔은 날로 커간다.
아픈 어미 염소의 젖을 짜듯, 사람들은 앓는 바다에서 과잉포획으로 물고기 씨를 말리고 있다. 최신 냉동시설을 갖춘 각국의 원양선단들이 오대양을 넘나들며 매년 8천4백만 톤의 물고기를 잡아 올린다. 주인 없는 공해 상에선 과욕을 부려 무조건 잡아 올린다. 잡아서 먹지 못하면 사료라도 쓰겠다는 주의다. 특히 일본과 러시아의 선단들은 세계 포획양의 근 25%에 육박하는 2천만 톤이나 잡아 들이고있다.
바다물고기가 고갈되면 양식(養殖)을 하면 될 것 아니냐고 반박할 지 모른다. 그러나 안이한 생각이다. 난립하는 양식장이 오히려 바다생선 남획을 부추기고 오염을 악화시킨다. 그 이유는 새우나 연어 한 파운드를 기르기 위해 2-4파운드나 되는 바다생선을 무차별로 잡아 사료로 쓰기 때문이다.
바다의 상처를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숱한 사람들이 어머니 같은 바다의 품에서 안식을 찾지만 바다의 안식을 헤아려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평안한 듯 보이는 바다지만 그 속에 격랑의 고통을 감추고 있다. 바다는 바다의 눈물을 닦아주는 큰아들 같은 파수꾼을 기다리고 있다. 소금이 바다의 상처란 사실은 혈육 같은 파수꾼만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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