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사~, 운전해. 어서!’ ‘김기사! 일 ‘고따구’로 할거야?’
MBC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야’의 ‘사모님’ 김미려의 웃음 비결은 단연 엉뚱함과 황당함이다. 24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느릿느릿 노련한 졸부 사모님의 말투로 분위기에 동떨어진 황당한 멘트들을 던지며 폭소를 자아낸다.
문방구에서 쇼핑을 즐기고 명품관에서 곱창을 찾는가 하면, 여의도 쌍둥이 빌딩 중 누가 형인지 궁금해 하는 엉뚱함은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도록 만든다.
실제로 만나 본 김미려는 ‘사모님’ 캐릭터 그대로였다. 느릿느릿한 말투는 물론이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에 자연스럽게 깃든 엉뚱함도 TV에서 보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24세 처녀에게 50대 사모님의 말투와 행동이 자연스럽다면 징그러울 법도 한데, 김미려가 그러하니 그저 재미있고 유쾌할 뿐이었다.
인터뷰 도중 종종 ‘키득키득’ 웃으며 수줍은 표정을 지을 때엔 꿈 많은 10대 소녀의 모습이 엿보여 귀엽기까지 했다. 당연히 1시간 남짓 진행된 인터뷰는 ‘사모님’의 현장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 유쾌했다.
개그맨과의 인터뷰는 재미있기만 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사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진지하고 말을 아끼는 개그맨들이 더 많다. 그러나 김미려는 모처럼 선입견에 꼭 들어맞는 개그맨이었다.
# ‘음악의 세계’에 빠졌던 소녀, ‘개그의 세계’로
김미려는 학창 시절 ‘음악인’이 되려는 꿈을 키웠다.(흔히 말하는 가수의 꿈이었지만 그녀는 한사코 ‘음악인’이라 주장했다) 광주에서 고교 시절까지 보낸 김미려는 학창 시절 5인조 여성 록밴드를 결성해 광주시내 호프집 등지에서 공연을 하며 나름대로 유명인으로 지내기도 했다.
당시 그녀가 몸 담았던 밴드의 이름은 ‘크레이지 독(미친 개)’. 왠지 록보다 개그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김미려는 베이스 기타와 키보드를 연주하는 나름대로 실력파였다.
“그때엔 정말 평생 음악의 세계에 푹 빠져 지내고 싶었어요. 부모님은 제가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는데 음악을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혈혈단신 상경했죠. 음악인이 되려면 돈이 필요하더군요. 일단 호프집 서빙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죠. 그러다 보니 꿈꾸던 ‘음악의 세계’가 아닌 ‘아르바이트와 술의 세계’에 빠져 살게 됐습니다.”
그런 김미려가 개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과정에도 역시 ‘음악의 세계’의 개입이 있다.
컬투(정찬우 김태균)와의 만남으로 컬트패밀리의 일원이 된 뒤 그녀는 ‘얼굴 없는 3인조 그룹’ ‘하이봐’의 멤버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컬투와 김미려로 구성된 하이봐는 코믹 신비주의를 표방하며 헬멧을 뒤집어 쓰고 활동했지만 그다지 반응을 얻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김미려 입장에선 얼굴도 못 알리고 음악인의 꿈도 좌절된 아픈 기억이기도 하다.
“처음 컬트패밀리에 합류할 때엔 개그만 할 각오였어요. 그런데 컬투 오빠들이 저의 음악적인 재능을 발견하고 일단 음악인으로 출발하게 해 주셨어요. 음반 사업을 구상중이던 회사가 저를 실험용으로 활용한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추억이죠. 어, 이거 쓰시면 안돼요. 컬투 오빠들한테 혼나요.”
김미려는 요즘도 남몰래 음악인의 꿈을 조용히 키우고 있다. 예전에 함께 했던 친구들을 규합해 밴드도 결성해 뒀다. 밴드 이름은 ‘보닛’이다. 뭔가 있어 보인다 했더니 ‘본네트’라 일컬어지는 자동차의 그것이란다.
# 반지하에 사는 사모님
김미려가 ‘사모님’을 탄생시킨 배경은 그녀의 엉뚱함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하이봐 활동을 접은 뒤 김미려는 별다른 활동 없이 컬투가 대학로에서 운영하는 개그 공연장인 컬트홀에서 공연 보조 등 허드렛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워낙에 당찬 김미려의 태도는 보조 요원이 아닌 공연 기획자와 다름 없었고, 그런 그녀의 캐릭터를 눈 여겨 본 컬투 등 선배들이 ‘사모님’ 컨셉트의 개그를 만들어 보라고 적극 권유하기에 이르렀다. 공연장 청소를 함께 하던 김철민이 ‘김기사’로 합류해 팀을 완성했고, 김미려는 김철민의 셔츠를 벗겨 한결 불쌍한 ‘김기사’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음악의 세계, 술과 ‘알바’의 세계 등을 지나 ‘우울의 세계’에 빠져 있었어요. 우울해 죽겠는데 기죽어 지낼 일이 뭐 있겠어요. 퉁명스럽게 사람들을 대했죠. 하다 보니 재미있던데요. 주위 사람들도 즐거워 하고요. 그냥 컨셉트로 밀고 갔죠. ‘사모님’은 어찌 보면 저절로 생긴 거나 다름없어요. 물론 많은 선배들이 아이디어를 제공해서 풍성하게 만들어 주시죠.”
김미려는 ‘사모님’을 통해 엉뚱하고 황당한 럭셔리함을 과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서울 신촌의 반지하 자취방에서 살고 있다. SBS 오락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활약중인 개그우먼 이경분이 룸메이트로 두 사람은 동고동락하며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김미려 화보
“거의 집에 못 들어가고 있어요. 할 일이 좀 많아야 말이죠. 사실 집에 선풍기도 없어서 여름을 어떻게 보내나 걱정 많이 했는데 잘됐지 뭐예요. 경분이 역시 바빠서 집에 거의 못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얼마 전에 오랜만에 가봤더니 거미 몇 마리가 방을 차지하고 있더군요. 김기사한테 쫓아내라고 시켰는데 뭐하고 있나 몰라. 일 ‘고따구’로 하고.”
김미려는 ‘사모님’을 적어도 1년 이상 장수 코너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도 많이 도입해보는 등 애를 쓰고 있다. 방송 시간은 5분 남짓이지만 그녀가 쏟아 붓는 시간은 족히 1주일에 5일은 된다.
“돈이 없어서 그래요. 사모님이 반지하에 사는 건 그렇잖아요. 오랫동안 생존해야 돈도 좀 만질 수 있지 않겠어요. 키득키득. 농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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