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여행할 기회가 있으면 이 곳을 꼭 방문해야 한다. 거기는 다름 아닌 ‘동방국가 예술 박물관’. 뜻밖에도 이곳에 모든 연령층을 망라한 한국 전통 의상들이 영구 전시되고 있어 큰 관심을 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주제로 아기 옷, 잔치 때 입는 옷, 환갑 때 입는 옷 등등 한복의 일생이 일목 요연하게 진열돼 있다. 김씨의 작품들이다.
1990년 러시아와 한국정부가 공동 주관해 개최한 ‘남북민속 공동축제’에 참가, 실력을 인정받아 1994년 박물관이 세워질 때 한국관에 소장할 한복 작품들을 요청 받은 것이다. (김씨는 러시아에서 현재 예일대 교수로 있는 북한출신의 김현식 교수를 만났고 부부가 됐다) 의상 디자이너가 된 것은 집안의 영향이 컸지만 한복을 짓게 된 것은 고등학교 재학시절 “한복이 참 섹시한 옷“이라는 미술 선생의 한마디 때문이다. 감추면 감출수록 매력을 느낀다는 설명이 잘 이해가 안됐다.
물론 이제는 안다. 김씨는 “여체와 옷감이 부딪칠 때 수결이 생긴다”며 “벽계수를 유혹한 것은 황진이가 입은 한복이 아니었겠느냐”고 토를 달았다. 그런데 왜 ‘조선조 한복’일까? 조선 왕조는 500년 태평성대를 누리며 복식 문화가 가장 발달했던 시대였다. 한국인의 얼과 문화의 정수가 한복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서양인의 8등신 구조에 못미치는 한국인들의 체형을 완벽하게 감싸주면서 최고의 멋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옷이 한복이다. 바짝 치올라간 저고리와 긴 치마, 가슴과 목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V자 모양의 동정... 어느 것 하나 여성의 미를 극대화한 조상의 지혜가 깃들지 않은 것이 없다.
한 평론가는 김씨의 작품을 ‘맺힐 듯 흐르는 곡선과 끊길 듯 이어진 직선, 그리고 눈이 아릴 만큼 화사한 색으로 극도로 절제된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했다.
김씨는 한복을 지을 때 입는 사람의 체격, 피부 색깔은 물론 느낌까지 고려해 디자인 한다. 쑥, 치자, 홍하 등 약재를 사용한 천연염료를 사용하니 향취마저 남다를 것 같다.
“한복은 돈을 주고 사는 옷이 아니다”라고 김씨는 잘라 말했다. 99개의 보자기를 준비하지 않으면 딸을 시집 보내지 말라는 옛말처럼 한복은 어머니가 오래 전부터 정성과 사랑을 담아 지어주는 옷이다.
결혼을 앞둔 커플이 6례 중 하나인 함을 쌀 때는 그들을 직접 불러 ‘세리머니’를 한다. 그들에게 엄중한 서약을 통해 ‘인내’를 가르치고, 어머니의 희생을 강조하고, 서로 헌신해 꾸려가는 가정의 소중함을 깨우치기 위함이다.
청담동에 있던 ‘조선조 김현자 한복’을 운영할 때는 윤미라씨 등 많은 연예인들이 단골 고객이었고 KBS 생방송 ‘좋은 아침입니다’와 같은 프로그램에 협찬도 많이 했다. 당시 연예계를 잘 몰랐던 김씨는 남편 김현식 교수로부터 일일이 연예인들의 특성을 설명 듣고 그에 맞는 디자인을 했다고 하는데 당시 김 교수는 한국말을 연구하느라 TV를 하루종일 보고 있었던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이제는 다 정리하고 몇 년전 워싱턴에 자리를 잡아‘VA 조선조 김현자 한복’으로 새롭게 시작했다.
‘기도가 소망이 되고 옷이 날개가 되고, 올이 살아 깃털이 되고, 사랑이 쌓여 정이 되는고, 정이 고여 삶이 되고 삶이 노래가 되는’, 그런 집을 미국에서 다시 지어 가는 게 김씨의 꿈이다.
문의 (703)591-1525.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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