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연
나의 열 네살 적 어머니는
연분홍 봉선화 꽃이셨다.
저무는 여름 하오 울 밑에서
눈물 적시는,
- 오 세영의 어머니 중에서
집안 곳곳에 핀 봉선화를 보며, 언젠가 읽었던 시 한 줄이 생각났다. 유난히 꽃을 좋아 하셔서 계절이 바뀔 적마다 좁은 마당은 몸살을 앓았다. 아직 한창 피어 있는 꽃들은 한 켠에서 즐기고, 다른 한 쪽 구석에서는 화분들이 다음 철을 준비하는 꽃씨를 품고 서로 도란대며 기다렸다. 철마다 바뀐 꽃처럼 엄마의 얼굴도 따라 갔다.
앵두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보일 듯 말듯 그려진 엄마의 눈썹이 모란꽃이 터지면서 똑같은 색깔의 입술연지를 발라 꽃만큼이나 크게 같이 웃었고, 봉선화가 장독대 주변에 피기 시작하면, 시인의 어머니처럼 눈물을 자주 보이시며 노래했다.
「울 밑에 선 봉숭아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더위에 지친 목소리로 흐느적 흐느적 생각나는 대로 처량하게 부르시던, 그 노래 소리를 듣고 자란 나 역시도 남편이 애써서 가꾸어 놓은 봉선화를 보니, 울컥 한 소절이 목소리 생긴 대로 나온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 적에, 어여쁘으으.」올라가지 못한 불완전한 음정은 눈물을 짓게 한다. 엄마가 생각나면서.
그 때 엄마가 그러셨다. 피난 떠날 때, 이 꽃이 샘가에 피기 시작 했었는데, 서울 수복 되었다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 때까지 나를 기다리며 피어 있더라고. 당신을 기다려준 그 꽃이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난다고. 얇은 노란 편지 봉투 모아, 「꽤 꽃씨」라고 쓴 후, 사루비아 꽃씨를 받아 넣을 때도, 엄마는 봉선화만 바라보았었다.
된 서리 내린 늦가을에도 갖가지 색으로 피어난 국화가 꼿꼿하게 자리를 했어도 손톱에 들인 물로 봉숭아꽃을 대신 했었다.
한국 출장 길에 꼭꼭 싸서 보내 주신 꽃씨를 가지고 와, 열심히 가꾸는 남편의 모습 속에서 엄마를 본다. 나의 수고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더하고, 간직했던 소중한 기억을 볼 수 있게 하고, 추억을 다른 사람에게 기쁨으로 전해 주고, 나누어 주며,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도록 헌신하는 그 모습.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며, 같은 꿈을 꾸게 하고, 한 사랑을 품고, 전하는 꽃씨를 이 가을 잘 모아 두어, 새 봄이 올 때 나도 내 아이들에게 꽃에 얽힌 사연을 얘기하며, 탄생과 결실의 기쁨 속에 우리가 함께 함을 알게 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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