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사이공에서 아시안 팝 가수와 미국 TV 기자가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둘은 곧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고 그녀는 어느 날 미국 대통령과 춤을 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모든 인생이 동화처럼 끝나는 것은 아니다’
1989년 10월호 ‘워싱토니언’ 매거진은 신디 네슨씨와의 인터뷰를 이렇게 시작한다.
한국 이름 송영희(사진). 신디 네슨이라는 미국 이름은 포드 대통령 시절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론 네슨과 결혼하면서 갖게 됐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한참 멀게 느껴지던 70년대에 세계 최고 권력 기관에서 일하는 남편을 둔 여인은 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초점의 대상이었다.
포드 대통령, 헨리 키신저, 일본 천황, 킹 후세인, 엘리자베스 여왕, 커크 더글러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루치아노 파바로니, 클린트 이스트우드... 네슨씨가 만나 본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들은 다 겪어 봤어요. 나는 정말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쉽게 상상하기 힘든 화려한 생활을 했다는 이유만이 행복의 조건일 수는 없다.
부산서 태어나 어릴 때는 6.25를 거치며 누구나 그랬듯이 힘든 시절을 보냈다. 미 공군 부대 가수 선발대회에서 뽑혀 연예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낮에는 타이피스트로 밤에는 가수로 활동하며 동생들을 뒷바라지 하던 일, 평생 ‘지아비’로 알고 살 줄 알았던 남편과 헤어져야 했던 충격,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암 수술 등등 돌이켜 보면 아픔과 굴곡도 많았다. 그럼에도 네슨씨가 “내 인생은 축복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중요한 분과의 만남 때문이다.
“몇 년전 위암 판정을 받았을 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언제나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며 살아왔는데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요.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살려주시면 당신을 섬기겠다고” 수술은 잘 끝났고 경과도 좋아 예전처럼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하루 하루를 큰 기쁨 속에 살아가게 됐으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아프기 전부터 교회를 나가려는 생각은 있었어요. 그러다 암에 걸리면서 더욱 절대자에 대한 확신이 확실해진 거죠. 이제는 지금 죽어도 좋다는 담대함과 평안이 있어요.”
워싱턴지구촌교회 다문화권 예배에 출석하고 있다는 네슨씨는 “짐 셜린 목사의 말씀이 너무 좋고 재밌다”며 “힘이 닿는 한 사역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예배에 출석하는 여러 민족의 여성들을 보면서 어쩌면 네슨씨는 30년 전, 40년 전의 ‘송영희’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워싱턴 한국일보에 ‘미국인의 에티켓’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었던 네슨씨는 최근 영문 자서전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내년 쯤 발간될 예정인 그 책의 제목은 ‘Bamboo Heart(竹心)’으로 정했다. 한 번 마음을 주면 변할 줄 모르는 그의 성격을 보고 누가 지어준 별명이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무대를 떠난 지는 수십 년이 되었지만 ‘남들에게 좋은 일만 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마음에 거리낌은 없다. 네슨씨는 그 마음을 다시 한 번 남들을 섬기는 일에 쓸 생각이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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