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추수감사절부터 크리스마스까지는 업소들이 가장 붐비는 기간이다. 업종에 따라서는 1년 장사의 절반을 이 때 하는 곳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15% 정도 매상이 오른다 한다. 미국인들은 이 기간 4,500억달러를 선물을 구입하는데 쓴다. 가구 당 4,000달러 꼴이다.
그러나 크리스마스가 끝났다고 샤핑몰이 한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애프터 크리스마스 세일이 다 뭐다 해서 바쁘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원치 않은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반품을 하기 위해 몰려들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국도 달라졌지만 70, 80년대 이민 온 한인들이 놀란 것 중의 하나는 미국 백화점의 너그러운 반품제도였다. 오랫동안 입던 옷이나 물건도 영수증만 있으면, 경우에 따라서는 영수증 없이도 이유를 묻지 않고 환불해 주는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미국도 처음부터 이처럼 반품이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반품제가 처음 시작된 것은 1880년 대 마샬 필드가 “주부가 원하는 것을 주라”를 모토로 내걸고 이유를 불문하고 물건을 가져오면 돈을 돌려주면서부터다. 이 가게의 매상이 급증하는 것을 지켜 본 경쟁사들이 너도 나도 이를 본받기 시작했고 이제는 이것이 미 소매업계의 관행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요즘은 미국 가게도 상당히 까다로워졌다. 한참 쓰다 돌려주는 얌체족은 말할 것도 없고 훔친 물건을 영수증 없이 가져와 환불해 가는가 하면 심지어는 상품권 액수를 위조해 전국 체인 각지에서 동시해 물건으로 바꿔가는 갱 조직까지 등장했다.
작년 이맘때는 부시 행정부의 국내 정책 담당 수석 보좌관인 클로드 앨런이 5,000달러어치의 물건을 반품을 이용한 교묘한 수법으로 훔쳤다 적발돼 보좌관직을 사임하기도 했다. 흑인이면서 보수파 변호사로 한때 연방 상원의원 물망에 오를 정도로 ‘뜨는 별’이었던 그는 일단 물건을 산 후 이를 차에 갖다 두고 다시 백화점으로 돌아와 같은 물건을 집어 원래 샀던 영수증으로 리펀드를 요청하는 수법으로 수천 달러어치의 물건을 훔친 사실이 밝혀져 정치 생명에 종지부를 찍었다.
전국 소매 연합에 따르면 올해 받은 선물의 9%가 반품될 예정이다. 이는 예년의 7%에 비해 높아진 것이다. 반품의 이유는 물론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인의 40%는 남이 준 선물을 다시 남에게 선물로 준 적이 있으며 70%는 상대방이 알지만 않는다면 받은 선물을 반품하고 싶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남의 마음에 꼭 드는 선물을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남의 마음을 제 마음처럼 알기도 어렵지만 똑같은 물건이라도 자기가 한 선물은 남이 준 선물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이 편차가 보통은 18%, 시댁 식구와 주고받은 선물은 40%에 이른다고 한다.
고르기도 어렵고 받아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이 상품권이다. 올해 미국인들의 총 상품권 구입액은 250억 달러로 추산되는데 이는 작년에 비해 60억달러가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상품권은 준 선물이 무엇인지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단점이 있다. 이런 까닭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상품권 선물을 특히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선물로 준 상품권의 10%는 끝내 사용되지 않는다. 업소마다 왜 그렇게 상품권 선전에 열을 내는지 알만 하다.
연말 샤핑시즌은 매상을 늘리기 위해 소매업계가 만들었다고 말들 하지만 실제로는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물건을 샀다 환불하느라고 소동을 벌이는 것보다 1년 내내 고르게 사는 것이 비즈니스를 위해서나 국가 경제의 고른 성장을 위해서나 바람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주고받는 현찰 속에 싹트는 우정’이란 말도 있지만 주고받는 선물이 가족이나 친지 사이의 유대를 돈독히 해주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는 것을 꼭 연말에 몰아서 해야만 하는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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