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그릇들을 치우면서 나는 딸아이의 흥겨운 고함소리를 듣는다. 거실 바닥에는 색색깔의 장난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아이는 아빠와 함께 놀고 있다. 우리에게 머물 공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집이 있기에 우리는 안도하고 머물고 자라난다.
지금껏 내가 머물렀던 집은 대략 열일곱 채 가량 된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의 의사에 따라 이사하곤 했지만 지난 십 년의 세월 동안은 나의 의지에 따라 집을 옮겼다. 그 십 년간 나는 모두 열두 번 이사를 했다. 미숙하고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그렇듯이 내가 살아온 집들 역시 풍족하거나 윤택한 환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가난했고 많은 것들을 그리워했으나 열의에 찬 세월을 그 집들에서 보냈다.
이 집들 가운데 가장 오래 머물렀던 집이 떠오른다. 이 집은 서울의 가장 평범한 주택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법한 허름한 벽돌집이었다. 나는 이곳의 방 두 칸에 사 년간 세들어 지냈다. 집이 위치한 주택가 골목은 비좁고 시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지나쳐야 했던 시장통의 상점들, 약국들, 낯모르는 마을 사람들, 언제나 이곳에서는 비릿한 생의 냄새가 났다. 가끔씩 밤이면 주인집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격한 다툼 소리, 바로 담벼락을 마주하고 있는 이웃집 창에서 흘러나오는 옛날 유행가 가락, 옆방 할머니의 투덜거리는 낮은 목소리가 내 방으로 스며들어 오곤 했다. 이 어둡고 쓸쓸한 방에서 나는 공부하고 일하고 졸업을 했으며 밤새 시를 쓰곤 했다.
때로 이 방에 살던 나를 생각해 본다. 그때 나를 가득 채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조금 비어 있었으나 그로 인해 조금 넘친 것도 같다. 나는 꿈꾸었으며, 사랑했으나 어두웠고, 서글펐고, 희망에 차오르기도 했고, 숱한 절망 때문에 절망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은 나를 채웠으며 자라나게 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과거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지만 과거의 것들은 현재 속에서 자라나고 변화한다. 지난 날의 기억은 매번 다시 쓰여지고 현재와 함께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과거에 그 집들은 꿈을 꾸었고 지금도 여전히 내 안에서 꿈꾸고 있다. 사람은 집과 함께 자라나고, 집도 사람과 함께 자라난다. 과거, 현재, 미래의 집들은 모두 꿈을 꾼다.
사람들은 그 집의 기억에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방에서 안녕한가, 나는 지금 자라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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