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17일은 1972년 괴한 5명이 워터게이트 호텔에 침입, 민주당 본부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경찰에 붙잡힌 워터게이트 사건의 35주년이다. 그러나 워터게이트가 닉슨의 재선이라는 비교적 일시적인 목적을 위해 이뤄졌고 특별검사 해고 등 대통령 권한을 악용한 것도 스캔들을 은닉하기 위해서였다면 오늘날 연방검사 무더기 해임을 계기로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과 문서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법무부 스캔들은 전혀 다른 차원의 국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부시 대통령에 대한 충성을 능력보다 중시 여기는 풍조가 백악관에 국한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법무부 백악관 연락관으로서 검사들을 해임·채용할 권한을 받은 모니카 구들링은 청문회에서 직업검사 채용시 정치적 성향을 고려, 법을 어긴 사실을 시인했다. 둘째 대통령이 법무부가 불법이라고 경고한 비밀 도청 프로그램을 강행했고 30명의 고위 법무부 관리들이 무더기 사임을 위협한 후에야 문제가 되는 부분을 제거한 사실은 법의 절차를 경시하는 부시 행정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2001년 취임식에서 “미국 대통령의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최선을 다해 미국 헌법을 보전하고 수호하며 방어할 것을 엄숙히 선서한다”고 맹세했다. 헌법 제정자들이 그처럼 국가 자체보다 소중히 여긴 헌법에서 가장 기초적인 원칙으로 꼽히는 것이 부당한 구금을 법원에 호소할 수 있는 권리, 신장 보호권(habeas corpus)이다. 이 권리가 없으면 권리장전에 담긴 나머지 모든 인권도 의미를 상실해버린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대테러전에 집착한 나머지 신장 보호권이 헌법으로 보장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상원 법사위원회는 신장보호권 복원법을 상정하기에 이르렀다.
닉슨 대통령의 백악관 법률고문이었던 존 딘은 ‘워터게이트보다 더 심한’(Worse Than Watergate)이라는 책에서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한 시절에도 비밀주의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은 부시 행정부가 국민을 오도해 이라크 전쟁을 추진한 과정을 비난했다. 그러나 워터게이트가 이전까지 정부를 순진하게 신뢰했던 미국인들에게 충격적이었다면 오늘날 냉소의 시대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스캔들에 무감각한 분위기다.
곤잘레스 법무장관은 오히려 국민이 선출한 의회를 비웃는 듯 청문회에서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80번 이상 반복한다. 오직 부시 대통령만이 그를 100% 신임한다고 고집한다.
연방상원은 11일 앨버토 곤잘레스 법무장관에 대해 불신임 투표를 갖는다. 여기에 보태 비록 임기가 18개월 밖에 남지 않았더라도 법무부의 독립과 헌법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를 남용한 부시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우정아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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