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서 있어!” 주로 오프사이드 반칙을 유도할 때 다급한 전술상(?)의 상황에서 누구보다 자주 입에 올리던 안 회장의 십팔번 같은 습관적인 용어다. 헌데 그게 겨우 아마추어 수준을 밑도는 선수들에게, 더구나 4번 유니폼을 입고 우측 문전을 책임 져야하는 나에게 이건 마치 적에게 빗장을 풀어주라는 말도 안 되는 주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그때 나와 함께 나란히 중간수비를 보던 안 회장 에게 버럭 역정을 내는 바람에 크게 무안을 주었던 미안함이 두고두고 후회로 남을 것 같다. 그 주인공이 애석하게도 “거기 서 있어!”란 말을 다시는 할 수 없는 저 세상으로 얼마 전에 우리 곁을 먼저 떠났다.
내가 안창규를 처음 만난 것은 75년 조지아를 잠시 거쳐 이곳으로 이주해온 후 아직도 이 지역 사정과 적응에 힘이 부칠 때 “축구를 제대로 해 보지 않겠느냐”며 끈질긴 회유를 받으면서부터다. 거의 지우고 살았던 청소년 시절의 축구 흔적을 다시 일깨워 그날 이후 내 축구인생 30년을 탈 없이 살게 해준 그가 내게는 큰 은인인 셈이었다.
내게 뿐만 아니라 직업이 정비사이다보니 자동차 수리 문제로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나 붙잡고 “축구장에 나오라”며 귀찮게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진땀을 뺐다는 에피소드 까지 있었다니. 그만큼 태극에는 홍보 책임자가 따로 없었고 그가 바로 대변인 역할에 심지어 시어머니(?) 노릇까지 1인 3역을 도맡았으니 그 열정이 대단하지 않았나 싶다.
그에게는 뒷날 워싱턴 축구협회장을 지낸 형(안달규)이 있었는데 이들 형제가 함께 운영하던 정비업소는 축구인 뿐 아니라 다른 여러 종류의 사람들로 날마다 북적대는 바람에 말 그대로 동네 사랑방 같은 편한 곳이 돼버렸다. 그게 바로 알렉산드리아 King`s Hwy. 선상에 위치한 유명한 An`s Mobil 이었다. 내가 태극축구회 사무실 본부현판을 여기다 붙여놓은 것도 그 때문이었고, 공무상 가끔씩 들르다 보면 마치 무슨 한인회 하나를 고스란히 옮겨다놓은 듯 한 분위기를 느끼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그의 폭넓은 인맥이나 원만한 대인관계로 보아 “한인회장 출마 어쩌구…” 했다던 주변 사람들의 권고가 왜였던가를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그가 본부장에 임명된 것은 태극축구회가 84년에 창단되면서부터고 그 후 감독을 거쳐 제7대 회장까지 됐지만 ‘축’ 소리만 나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는, 이 지역에서는 몇 안 되는 미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안창규 회장이었고 심지어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축구에 대한 크고 작은 소식마저 그의 입을 빌리지 않고는 알 방법이 없을 정도로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였다.
목사 신분으로 초대 회장이고 보니 선수들 하나하나 조금씩은 아는 편이고, 해서 나더러 ‘모범 태극인’ 몇을 뽑으라면 이미 고인이 됐지만 “정말 미치겠네”의 송영삼, “늘 조용한 신사” 최창희, 그리고 이 추모문의 당사자인 “거기 서 있어”의 안창규, 등 제씨 들이다.
창단멤버이기도한 이 셋의 공통점이라면 충절성, 공로성, 인간성 등이 남다르다는 점, 그런 안창규 회장이 태극을 떠났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이제 겨우 55세라는 한창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러나 나는 그가 한줌의 재만 남기고 사라진 거로만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족들에 대한 애정과 축구에 대한 영정을 태극인들의 마음속에 묻어주고 떠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족들에게 위로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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