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카리브 해안의 샌 쟌, 아내와 여행 중 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하얏트 호텔의 중국 식당에서 요리장이 권하는 식사를 골랐다. 말이 중국식사였지 현지인이 만드는 식사인지라 중국 요리를 비슷하게 흉내 낸 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웨이터가 어떠했는가를 묻자 ‘기대 이하’였다고 솔직히 답했다. 조금 있다 가져온 청구서에는 내가 맛이 없다고 했던 요리 값은 아예 제외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손님의 기분을 살피는 배려도 좋았지만 손님의 의견을 구하고 불평을 받아들이는 솔직한 태도에 오히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장사익 선생 일행을 모시고 애난데일에서 성업 중인 한 식당을 찾았다. 메릴랜드 공연 이후 워싱턴의 청소년을 위한 무료공연까지 배려해준 성의에 대한 나의 감사였다. 일행의 식사 가운데에서 반창고가 너덜너덜한 일회용 대일밴드가 나왔다. 순간적으로 싸늘해진 분위기는 무슨 말로도 표현할 길이 없다. 애써 불편한 마음을 감추고 웃었지만 배를 불리고 가슴 뿌듯한 즐거움은 기대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종업원이 황급히 치우고 다시 음식을 가져다주겠다고 했지만 무슨 기분에 음식을 대할 기분이 나겠던가? 주방에서 손가락에 찼던 반창고가 떨어져 나간 줄도 모르고 급한 마음에 내보낸 식사였겠지만 서울에서 찾아온 귀한 손님들에게 공치사는 고사하고 예의 없는 만찬이 되고 말았다.
애난데일을 중심으로 치열한 한인 식당의 무한 경쟁도 문제이지만 서비스의 질을 기대한다는 것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할 노릇이 되고 말았다. 돈 내고 허기진 곱창이라도 채우기 위해 식당을 찾은 것은 아닐진대 손님의 인격은 고사하고 문전 박대 당하는 기분을 느끼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물며 하루가 모르게 뒤바뀌는 종업원들의 이직으로 직원 교육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한 실정에서 친절한 서비스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일는지도 모른다. 이민자의 삶을 살면서 직업의 고귀함과 직종의 차이가 있을 리 없지만 손님은 고사하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교양과 태도는 전적으로 이를 관리하는 업주의 몫이다. 업주의 안이한 태도와 경영의지가 부지불식간에 종업원들의 무사안이한 주방관리로 나타나게 된다.
반창고를 삶아 내오는 식당도 문제이거니와 주방 책임자나 관리자 그 어느 누구도 찾아와 정중한 인사도 없는 몰상식은 한인 업소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것이다. 집에서 누구나 쉽게 끓여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너도나도 음식점 개업에 준비 없이 뛰어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 좋다는 주방장은 거액을 받고 스카우트 되었다가 몇 달이 안 되어 경쟁업소로 옮겨가기가 일쑤이다. 음식의 질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매너조차 상실된 비즈니스는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스물다섯명이나 되는 일행의 자리 마련을 위해 이 식당에 미리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종업원이 바로 옆에 있던 종업원에게 자리가 있겠느냐고 상의하는 것이다. 전화기에 들려오는 다른 종업원의 대답은 더욱 가관이었다. “응, 자리 있으니 오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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