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생각
이경현 기자
헌법재판소의 최근 결정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 국적의 영주권자, 주재원, 유학생들에게 참정권 행사의 길이 열리게 됐지만, 이에 따라 재외국민에 대한 책임과 역할이 더욱 커지게 된 재외공관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지는 것은 왜 일까?
시카고만 하더라도 총영사관이 이 지역 유권자들에게 현 정부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투명하게 설명할 것이라는 믿음 보다는 잘 선전하고 싶은 것만 강조할 것 같다는 의혹이 생길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 청와대에서는 기자실을 통폐합하고 브리핑룸을 만들어 정부가 원하는 정보를 잘 포장해서 기자들로 하여금 국민들에게 널리 홍보해 주길 바라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 이는 비단 청와대가 추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시카고 총영사관도 현지 언론에 이와 같은 기대를 갖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손성환 시카고 총영사는 지난달 29일 낮 모 지역 한인회장과 선약을 했다가 한국에서 시카고로 오는 귀빈을 영접해야 한다는 이유로 전날 급히 약속을 취소했다.
상황이 이쯤 되면 한국에서 오는 사람이 꽤 높은 분(?)일 것이라는 직감이 들어 총영사관측에 누가오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영사관측은 잘 모르는 일이라며 딱 잡아 떼었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외교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협상이 타결된 뒤, 그 협정문에 서명하기 위해 워싱턴DC로 가는 길에 시카고를 경유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기자는 그를 만나 미국에 취업하려는 한인들의 최대 관심사이기도 한 전문직 비자 쿼터에 대해 한국이 미국에 요구했던 것이 단지 협조를 약속받는데 그친 점 등 FTA관련 질문을 하기 위해 급히 공항으로 향했다.
하지만 김 본부장은 뉴욕을 거쳐 워싱턴으로 가기로 갑자기 일정이 바뀐 탓에 허탕을 치고 말았다. 허탈한 마음으로 편집국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은 지, 채 몇 분 되지도 않아 총영사관 직원이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와 팩스로 보낸 보도자료가 잘 도착했는지 물어보는데, 자료는 막 들어오고 있었다. 기자의 질문에는 모르쇠로 일관했던 영사관측이 자신들이 보낸 보도자료는 끔찍이 챙기는 모습에 씁쓸했다.
총영사관에서 중요하거나 민감한 사안일수록 아예 언론에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자세는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처사일뿐더러 언론에 대한 과도한 피해의식의 산물이다. 재외국민들의 참정권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이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한 알권리가 먼저 보장돼야 한다. 총영사관에서는 참정권이라는 중요한 기본권을 누리게 된 재외국민들에게 이젠 더 이상 “이 정도만 알려줘도 되겠지”라던가 “이런 것은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라는 오만한 태도를 버려야 할 것이다.
또한 언론이 정부에 대해 근거없이 돌팔매질 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투명하게 알릴 것은 알리고 이에 관한 국민의 평가는 겸허하게 수용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FTA 추가 협상에 교섭단이 최선을 다해 임했다면 그 결과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국민들에게 알려야지 뭔가 비판을 받지는 않을까 하며 피하려는 자세는, 오히려 그 이면에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혹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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