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 입양 어린이 4명이 양아버지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사건은 충격적이다. 평소 아이들에게 자상했던 것으로 알려진 양아버지가 왜 이처럼 끔직한 일을 저질렀는지 많은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태어난 나라에서 버림받고 미국 가정에 입양됐다가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숨진 어린아이들의 짧은 삶의 기구함이 모두의 마음을 후벼 판다.
전쟁의 폐허 위에 이룩한 눈부신 경제성장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입양아 수출국가라는 오명을 갖고 있음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한국전쟁 이후 최근까지 입양된 한국 어린이들의 통계를 보면 전체 입양아 22만4,000명중 70%인 15만7,000명이 해외로 입양됐다. 지금은 4위로 밀렸지만(?) 몇 년전 까지만 해도 한국은 미국에 입양아를 가장 많이 보내는 국가였다. 선진국을 상징한다는 ‘경제개발 협력기구’(OECD) 회원국가라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이다.
한국 입양아들의 참극을 입양 실태와는 무관한, 한 가장의 몰락에 따른 극단적 선택이 초래한 가정의 비극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참극의 원인을 찾아 가다 보면 한국 사회의 비뚤어진 의식에 뿌리가 닿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의 해외 입양은 1955년 8명의 전쟁고아가 미국인 홀트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시작됐다. 공식적인 입양 기록이 잡히기 시작한 것은 1958년부터. 1970년까지는 버려진 아이들이 전체의 58%로 절반을 넘었고 다음이 결손가정, 미혼모 순이었다. 그러던 것이 70년대부터 미혼모 아이가 버려진 아이들을 뛰어 넘기 시작했고 90년대 들어서는 미혼모의 아이가 90%를 넘어섰다.
무참히 피살된 어린이들은 4명 모두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었다. 최근 ‘싱글 맘’에 대한 인식이 많이 열리고는 있다지만 어린 미혼모들이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기에는 한국만큼 힘든 나라도 없다. 미혼모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여전히 차가운데다 이들에게 도움을 줄만한 지원망이 거의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혼모 문제는 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들에도 있다. 그러나 이런 나라들은 미혼모와 버려지는 아이들에게 손가락질하기 보다는 정부와 사회, 그리고 가정에서 따스하게 감싼다. 그래서 아이를 출산한 10대들이 한국의 10대들처럼 자기 아이를 다른 나라로 보내는 경우는 없다. 일본의 경우를 보자. 일본이라고 해서 10대 미혼모 문제가 없을 리 없다. 하지만 일본에는 해외 입양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나라 안에서 고아들을 거둬들이는 구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양자제도는 핏줄 같은 명분보다는 실리를 우선시 한다. 가업을 계승시키기 위해 아이를 들이기도 하고 양육의 기쁨을 위해 입양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국은 여전히 핏줄에 대한 집착이 강한 나라다. 근본 따지기를 너무 좋아한다. 외국에서 잘 성장한 후 뿌리를 찾아 한국으로 돌아 간 입양아들은 “한국정부는 우리를 냉정하게 외국으로 떠넘긴 실수를 저지른데 이어 다시 돌아가려는 우리를 외국인 취급하는 두 번째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좌절감을 털어 놓는다.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후 한국사회에서 외면당해 미국으로까지 건너와야 했던 어린아이 4명의 비극적 죽음을 보면서 대한민국은 과연 이 참극에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