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를 평생 18번(애창곡)으로 부르는 동료가 있다. ‘…지난 날 강가에서 말달리던…’으로 이어지는 애국가곡 ‘선구자‘(조두남 작곡)이다.
이 노래 때문인지 ‘선구자’라면 김 구, 안창호, 이승만, 서재필 등 독립투사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김일성도 만주벌판에서 말달리던 독립군 빨치산이었다고 했다. 선구자가 꼭 애국지사들만은 아니다. 헨리 포드는 자동차의 선구자,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의 선구자이다. 박정희는 군사독재의 선구자이자 한국 근대화의 선구자이다.
‘선지자’도, ‘선각자’도 있다. 선지자는 어느 동료의 익살처럼 “남들보다 뉴스를 먼저 아는 기자”가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수의 강림을 오래전부터 알려온 이사야와 엘리아 같은 예언자(Prophet)를 지칭한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흑인노예를 해방시킨 아브라함 링컨, 평화시위로 소수민족의 인권을 향상시킨 마틴 루터 킹 등은 당시대 사람들보다 사리판단이 정확하고 빨랐던 ‘선각자’이다.
한민족이 존경하는 선각자 가운데 충무공 이순신이 있다. 인해전술로 몰려올 20여만 명의 왜적을 재래식 각개전투 전법으로는 당해낼 수 없다고 판단한 이순신은 기상천외의 철갑 전투함(거북선)을 준비해뒀다가 왜적의 배를 함포사격으로 수장시켰다.
그 임진왜란 후 400여년이 지난 지금 일본이 전혀 다른 전법으로 한국을 ‘침공’하고 있다. 전쟁을 벌이지도 않고 한국영토의 일부분을 점령한 형국이다. 독도(일본 이름은 다케시마)가 원래 일본 땅이었으므로 당연히 되찾아 와야 한다며 시비를 건다.
그 시비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광우병 촛불시위대와 보수우익 단체가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나란히 항의를 벌일 만큼 심각한 반응을 일으키는 이유는 그 전략의 치밀함 때문이다. 일본정부가 중학생 학습지도 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문제를 거론한 것은 장기적으로 독도를 한일 간의 영토문제가 아닌 국제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결국 국제사법재판소로 들고 간 후 국력과 외교력을 바탕으로 한국을 따돌린다는 속셈이다.
한국조야는 일본의 현대판 영토침공에 속수무책이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과격시위가 벌어지기를 일본정부가 고대한다는 주장도 있다. 데모가 격해지면 국제여론이 환기되고 그 만큼 국제분쟁지역이라는 인식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맥 놓고 있으면 독도가 일본 영토임을 자인하는 꼴이 된다. 이순신 같은 선각자나 해결할 수 있는 난제이다.
그런데, 그런 선각자가 우리 주위에 있다. 독도문제에 ‘미친’ 최홍배 교수(한국해양대학, 국제법)가 그 사람이다. 최 교수는 일본정부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전략을 이미 오래전에 간파했다. 독도문제 해결의 요체는 분신이나 ‘단지혈서’ 따위의 과격시위가 아니라 일본정부처럼 국제사회에서 통할 수 있는 법리적 논거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5년간 본보에 이를 알리는 글을 계속 기고해온 최 교수는 50을 훌쩍 넘은 나이에 시애틀 유학생이 돼 국제영토분쟁 관계법(영어도 겸해서)을 공부하며 밤잠을 설친다. 영어장벽으로 애를 먹자 현재 중학생인 딸을 법대에 진학시켜 대를 이어 완수한다는 원대한 계획도 세워뒀다. 한인사회에 독도문제의 실상을 알리는 전시관을 마련하기 위해 목단강 가에서 말달린 선구자처럼 서북미 전역을 자동차로 누비며 ‘동지’들을 찾고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적수공권의 교수가 감당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선각자들이 그런 길을 걸었다. 세종도, 링컨도, 박정희도 그랬다. 이순신은 관료들의 몰이해와 질시로 옥살이까지 한 후에도 왜구퇴치를 위해 백의종군했다. 아무런 직함도, ‘계급장’도 없이 독도 지킴이 사명을 위해 백의종군하는 최 교수에게 찬사를 보낸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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