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사전에는 약 15만개 이상의 낱말이 수록되어 있다 한다. 그 중 십분의 일만 안다고 가정하더라도 일반 성인들은 대개 1만5,000개 이상의 단어 능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의 단어능력의 십분의 일 즉 1,500개의 단어도 채 사용하지 않으며,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실제로 사람들의 입에 붙어 자주 쓰이는 단어는 몇 백 개에 불과하다.
재미있는 것은 그 몇 백 개의 낱말들 중에 어떤 말을 얼마나 자주 쓰는가는 사람마다 틀리다. 즉 사람마다 좋아하고 자주 쓰는 단어의 색깔과 밝기와 톤과 강도가 참 많이 다르다. 심지어 같은 단어라도 사람에 따라 음운이 다른 경우도 많다. 별로 새로운 것이 없는 사실처럼 듣기지만 숨을 한번 크게 들여 쉬고 겸손히 몸을 낮추어 곰곰이 들여다보면 소중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수많은 낱말들 중에 어떤 말이 결국 자기의 말로 굳어져 버리는가는 여러 가지 요인에 달려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어떤 말을 가장 많이 듣고 자주 접하는가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학습의 동물이라 능동적이건 수동적이건 학습된 대로 움직이고 반응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자랄 때 가장 많이 접하는 것은 단연 가족이다. 좋은 낱말을 듣고 자라면 좋은 말이 나오게 되어 있고, 반면에 나쁜 단어를 듣고 자라면 나쁜 단어가 입에 박히게 되어 있다. 아이들은 부모들의 자주 쓰는 낱말 단어장을 그대로 상속받는다. 매일 욕을 달고 사는 아버지 밑에서 크는 아이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남들을 시기하는데 바쁜 엄마와 사는 아이들이 건강한 단어를 쓸 수 없다. 말처럼 전염성이 강한 것도 별로 없다. 특히 부모로부터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우리 병원에서도 대소변 검사를 한다. 대소변을 검사하면 그 사람의 건강상태를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보이지 않는 말을 검사하면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정신적 마음적 건강상태까지 알 수 있다. 안이 건강한 사람은 아래나 위로 나오는 것 모두 건강하지만, 속이 곪은 사람은 위아래로 나오는 모든 것이 곪아 있다. 그런 사람들의 입에선 멜라민보다 백배 천배 더 독성이 강한 말들이 뿜어져 나온다.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거라고 아무렇게나 내뱉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 돌보다도 더 강하게 새겨지는 말들이 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따뜻한 낱말로 듣는 사람을 따뜻하게 만든다.
희망을 품은 사람은 희망의 낱말로 듣는 사람에게 희망을 가지게 한다. 요즘 아이들의 장래 희망 1위는 부자이다.
과학자·변호사·판사·정치가보다 부자가 제일로 되고 싶은 사람이다. 따라서 과학자·변호사·판사·정치가가 되려면 그에 필요한 교육을 시켜야 하듯이 우리아이들을 부자로 키우려면 똑같이 그에 따른 연습을 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하지 않고서는 존경받는 부자가 될 수 없다. 물론 부자들이 모두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은 아니지만, 부모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아이들이 부자가 되기 이전에 건강한 사람이 되길 원할 것이다.
MIT 대학의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 교수는 언어학자이자 사회비판가이다. 일찍이 그는 언어가 사회를 지배한다고 역설해 유명해졌다. 그 사회가 현재 어떤 사회이고 그리고 미래에 어떻게 변화할지는 그 사회에서 어떤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은 한 사람을 그리고 한 사회를 평가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뒤집어보면 말로써 그 사람과 그 사회의 흥망성쇠가 결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15만개의 국어사전 단어 중에서 우리들이 입에 달고 사는 낱말은 겨우 백분의 일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선택된 단어들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우리 아이들의 장래가 결정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어떤 단어를 선택하는가는 우리 부모들의 단어장에 어떤 낱말이 들어 있는가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홍영권
(USC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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