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종군기자로 그리고 냉전중에는 구 소련의 문예잡지에 요주의 인물로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던 호놀룰루 스타불루틴지의 여기자 사라 박(사진)씨가 사후 50년여년이 지나서야 워싱턴 D.C. 의 언론인 기념관에 이름을 올리게 됐 화제가 되고 있다.
1927년 출생해 29세를 일기로 1957년 노스쇼어의 해일 현장을 취재하다 헬기 추락사고로 의해 순직한 고인은 생전에 인터네셔널 뉴스 서비스와 로이터 통신 등에서 활약했었고 특히 하와이에서는 일선에서 직접 발로 뛰며 때로는 직업댄서로, 잠수부, 혹은 시각장애인을 가장해 주민들의 반응을 살피기도 하는 등 지역주민들의 삶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생동감 넘치는 필력으로 이를 널리 알려 독자들을 감동시켰었다.
박씨는 1957년 3월9일 노스쇼어 인근에 해일경보가 발령되자 취재를 위해 친구였던 폴 O. 빔에게 헬기를 조종해 자신과 당시 사진기자였던 잭 마쯔모토를 해일 현장까지 보내달라고 요청했으나 얼마후 라이에 인근의 바닷가에서 발생한 헬기 추락사고로 마쯔모토를 제외한 박씨와 그녀의 친구 빔은 사망했었다.
박씨는 내년 봄 올해 사망한 다른 기자들의 이름과 함께 워싱턴 D.C.의 언론인 기념관에 헌정될 예정이다.
현재 언론인 기념관에는 보도 중 사망한 1,898명의 언론인들의 이름이 올라 있다.
한미 언론인 협회 이경원 초대회장은 언론인 기념관에 봉헌된 한인 기자로는 박씨가 유일하며 전쟁에 직접 참전해 현장을 보도한 첫 한인 기자로 남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박씨는 여성 기자가 드물었던 당시 성별간의 벽을 허물고 전쟁터를 발로 뛰며 소식을 전한 선각자이기도 했다는 것.
스타블루틴의 전직기자로 활동했던 라일 넬슨은 박씨가 전쟁터에서 병사들과 함께 생활하며 생생한 현장을 전했던 기억을 회고하기도 했다.
한국전 당시 전기가 없어 장병들이 전방에서 촛불을 켜고 근무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한 박씨의 기사가 하와이에서 주민들의 호응을 얻어 15만개의 양초가 모아지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는 것.
박씨가 사망한 후 아서 B. 천 육군 중령은 “(박씨는)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병사들과 참호와 고지를 함께 넘으며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생생하게 보도했었다“며 “그녀는 단순한 종군기자가 아니라 병사들과 동고동락을 나눈 ‘동지’에 가까웠다”고 회고했다.
한국전쟁을 생생하게 그려낸 박씨의 기사로 구 소련의 한 뉴스매거진은 그녀와 또 다른 7명의 미국인 기자들을 ‘펜을 든 깡패(박씨는 이를 상당히 자랑스러워 했다)’로 비유하며 블랙리스트에 올리기도 했다는 것.
박씨는 1950년부터 스타불레틴지에 근무하기 시작했고 1952년 겨울부터 1953년 봄까지 한국전쟁에 종군기자로 참전한 후 1954년 다시 한국과 일본 등지에서 활동했었다.
스타불레틴에서 기자로 근무한바 있는 토미 내플러는 박씨가 출근하기전 서핑을 즐기기도 했던 하와이 토박이 소녀였고 매우 열정적이고 용감한 기자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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