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임(1963~) ‘회전목마’ 전문
내가 달리고 있다고 확신에 차 있을 때
삶은 눈먼 자의 환희처럼 빛난다
어둠 속에서도 별과 나무들은 춤추며
사원과 극장과 병원과 공장들은
한 올의 의심도 걸치지 않고 유쾌하게 돌아간다
내가 동경하는 종교는
이런 천진한 현기증
그러나 달리는 건
나와 목마들이 아니다
멈추지 않는 무심한 의지에 의해
보이지 않는 무자비한 신성에 의해
나의 발 밑 거대한 광장이 돌아간다
그 광장의 붙박이가 되어 나는
기계적으로 솟아오르고 가라앉으며
묶인 말발굽들과 함께 일생 동안 삐거덕거린다
달릴 수 없는 목마가 부르는 노랫가락에 맞춰
들썩이며 구경꾼들에게 손을 흔들어댄다
내가 동경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이런 흥겨운 비애
고요하게 돌고 있는 하늘을 가리키며
나는 일그러진 웃음의 향기를 내뿜는다
삶이라는 것은 내가 의식하고 내 의지대로 움직일 때만이 진짜다. 그런데 이러한 움직임이 없이도 이동이 가능하고 기계적으로 우쭐거리기까지 한다면, 이것은 주체가 아니다. 타자에 의해서 수동적인 움직임만을 가질 뿐인, 반복적으로 제자리걸음만을 할뿐인 회전목마. 신께서 우리에게 부여한 운명이 회전목마와 같다는 생각을 문득 한 듯싶다. 정해진 범주를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인간들에 대한 서글픈 생각이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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