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대학생 아이들에게 장래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본다. 네 명 중에 세 명은 잘 모른다고 대답한다. 덩치는 큰 놈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직 모르며 졸업이 가까워지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다고 한다. 언뜻 들으면 장래 진로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며 좀 더 경험이 쌓일 때까지 굳이 정하지 않고 신중을 기하는 태도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자기의 장래를 자기가 결정해야 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하거나 두려워한다. 더 경험을 쌓으려고 백방으로 동분서주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진정으로 알기 위해 특별한 활동을 하지도 않은 채로 단지 시간만 보내면서 결정을 자꾸 뒤로 미루는 것이다. 그러다가 막판에 가까이 있는 것을 허겁지겁 잡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안타깝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대학에 들어올 때까지는 정해진 대로만 하면 되었고 자신이 크게 리스크를 안고서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리고 부모들도 대학 입학까지는 적극적으로 관여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아이들에게 맡긴다. 마치 온실에서 키운 화초를 갑자기 밖에다 내어 혼자 내버려두는 격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 후의 인생을 설계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 큰 부담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고 그에 따른 책임감도 버겁기만 하다. 앞장서서 끌어주던 부모들도 물러나 버렸고 처음으로 장래에 대해서 혼자 생각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장래에 대한 최선의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것을 좋아하고 앞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아야지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적성 테스트나 성격검사를 한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기의 경험을 뒤돌아보는 것이다.
과거를 알면 미래를 예측하기가 그만큼 쉬워진다. 또 어떤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려면 두드리고 흔들어 봐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극과 충격을 주었을 때 나오는 반응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 자극과 충격은 바로 경험이다. 경험이 많은 학생일수록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장래 진로를 결정하기 쉬워진다.
바야흐로 진학준비 기간이 되었다. 고등학생들은 대학에, 대학생들은 직장이나 대학원에 지원한다. 그때마다 필수적으로 따르는 것은 추천서이다.
추천서에 담길 내용 중 중요한 것은 왜 그 대학, 직장 혹은 대학원을 가는 것이 중요하고 그 학생의 인생 설계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그려내야 한다. 추천서에 그런 그림이 잘 그려진 학생들은 대부분 좋은 결과를 얻는다.
얼마 전에 성실치 못한 학생 한 명에게 내년을 대비해서 미리 자신에 대한 추천서를 써 보라고 했다. 그 학생은 자신의 추천서를 직접 써 보면서 자기를 더 알게 되고 근면하지 못 했던 삶에 대해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현재의 삶이 고스란히 그려진 그 초라한 추천서로는 자신이 심사위원이라도 자기 같은 지원자를 뽑지 않을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 후 그 학생은 놀랄 정도로 달라졌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끝에 가서는 처음을 돌아본다. 하지만 끝까지 가지 않고서도 처음을 돌아볼 줄 아는 것은 지혜이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하다가도 언젠가 올 자기의 죽음에 대비해 유서를 써 보라고 하면 모두 숙연해 진다.
졸업을 코앞에 두고서야 장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직무유기이다. 자신에 대해 잘 모르면 국어 수학을 공부하듯이 자신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가장 좋은 공부는 발로 뛰며 부지런히 경험을 쌓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자신을 알려고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며 졸음만 오게 된다.
홍영권
(USC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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