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렛 한
어느 이른 아침 외출할 일이 있어 주차장의 자동차 문을 열고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나 차창에 이슬이 뽀얗게 서려있어 앞이 보이질 않았다. 뒷쪽 유리창 전면에도 하얗게 서려있어 도저히 그대로는 운전할 수가 없어 화장지로 앞뒤 유리에 서린 이슬을 닦아내었다. 마치 서울에서 한겨울에 아침에 일어나서 발견한 유리창의 하얀 성애의 모습이다.
그 서리 조각들의 결정체에 손가락으로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써넣던 기억이 난다.
차창의 성애라면 영화 닥터 지바고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닥터 지바고가 러시아의 한 겨울 흰 눈 덮인 시골역 기차속에서 성애 낀 차창 밖으로 잊지 못하는 연인 라라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막 떠나려는 기차에서 내려 흰 눈밭을 라라를 부르며 쫓아가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심장마비로 길 위에서 쓰러지고 연인 라라는 아무것도 모른 채 점점 멀어져만 가던 그 기차역에서의 성애 낀 차창을 기억한다.
그 옛적 겨울에는 종아리도 내놓고 뾰족구두도 신고 잘도 돌아다녔다.
그러나 이젠 결코 그렇게 못한다. 젊었을때와 나이들었을때의 차이다.
예전엔 평생 20살 젊은 나이로 있을것처럼 나이든 아줌마를 보면 왜 저렇게 허리도 없고 오리걸음 걸으며 뒤뚱거리는지 혀를 찼다. 그러나 그 볼품없는 아줌마가 지금의 내 모습일줄 세월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니 인생은 장님이다.
며칠 전 서울에서 온 지인들과 함께할 시간이 있었다.
요즘 서울에서 갓 나온 시리즈편을 듣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다. 나이든 남편을 칭하는 호칭 시리즈인데, 삼시 세끼중 식사를 한끼도 안하는 남편은 “영식님”, 한 끼를 드는 남편은 “일식씨”, 두끼를 두는 남편은 “이식이”, 세끼를 몽땅 하는 남편은 “삼식 새끼”라고. 그 외에 덩어리 시리즈부터 많은 우스개말이 쏟아져 나오는데 나이들어감의 서러움이 씨니컬하게 표현된 웃지못할 속어들이다.
그중에 사회복지학을 강의하는 지인이 있었는데 한국이 노인 자살률 1위라고 한다.
나이든 인구는 늘어 가는데 정년 퇴직은 빠르고 부유층을 제외한 사회복지 시설은 아직은 요원하게 들린다.
새삼 나이들어감을 실감하는 가운데 예전에 봤던 영화 “American Quilt” 에서 사랑에 방황하는 젊은 손녀에게 Quilt 짜는 할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젊은 사람은 완벽을 추구하지. 하지만 나이든 사람은 누더기 조각을 바늘로 꿰매며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누더기 천처럼 조금은 모자라고 낡은듯하고 어설퍼 보이기만 하는 인생이지만 이는 하나의 완성된 조각보를 짜가는 수고롭고 값진 삶의 과정임을 표현한다. 다시금 새소리 바람소리에 행복해하는 산정 등반 우인의 글을 생각하며 미소짓는 가운데 레이 찰스의 구수한 노래가 들린다.
I see trees of green, red roses, too. I see them bloom for me and you. What a wonderfu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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