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유학을 오기 전에 난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지체장애학생들을 위한 한 특수학교에서 6년을 근무했었다.
그 학교는 장애학생들이 기숙사에 머물면서 학교와 병원과 직업훈련소로 연결되는 서비스를 받고, 사회에 나가 독립생활의 재활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돕는 우리나라 최고의 장애인 종합시설이었다. 매주 각부서의 장들과 실무책임자들이 모여 케이스 컨퍼런스를 했고, 장애아동 한명 한명에 관심을 가지고 개별화 서비스를 80년대에 이미 실천하고 있었다. 지금 미국에서 지양하고 있는 IEP미팅과의 차이가 있다면 부모와 장애인 본인이 제외되었다는 점과 치료와 교육을 담당하는 전문인간의 첨예한 대립을 손꼽을 수 있었다.
미국에 와 처음 공부를 시작하며 청각장애인 교육에 얽힌 문제점에 대해 토론을 할 때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의학의 발달로 인공 와우 시술법이 개발되었고, 청각장애아에게 인공와우를 삽입함으로써 청력을 잃었던 아이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엄마에게는 “엄마”하고 부르는 아이의 입술이 마냥 귀엽고 신기하게만 느껴지는 일이었다. 청각장애인들이 들을 수 있게 되고 사람들과 거의 정상에 가까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적의 성과를 낸 의학의 힘을 두고 청각장애인 단체에서 심각하게 반발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주장이 억측으로 들리기도 했으나 나에게는 생각할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청각장애인들 간에는 서로의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손과 몸동작을 통해 대화를 하는 수화(American Sign Language)라는 ‘언어’가 있다. 수화도 언어로서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독특한 문법체계를 갖추고 있는 공인된 언어다.
현재 많은 대학에서 수화를 제2 외국어로 인정, 대학생들이 선택해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있을 정도다. 청각장애인 단체의 주장은 미국 내에 소수민족들이 영어가 아닌 자신들만의 외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듯이 자신들도 영어가 아닌 수화언어를 사용하는 소수 민족일뿐 ‘장애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모든 청각장애인이 인공와우 시술의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시술의 받은 사람의 청력도 모두 정상으로 돌아오는 완벽한 기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이 무리하게 인공와우에 의존하고 수화가 아닌 입을 통해 발성을 하게 하는 구화를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의 언어인 수화를 배우려는 자세는 전혀 없이 무조건 구화를 사용하고 ‘들을 수 있는’ 사람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고집스런 일반인들의 생각이 바로 그들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이란 주장인 것이다.
한국의 최첨단의 전문적이고 포괄적인 특수교육을 제공한다는 기관에 근무를 할 동안 부모님들은 물론 전문인 간에도 ‘선 치료, 후 교육’이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장애를 치료해 먼저 ‘정상’으로 만들고 싶다는 부모의 욕심과 교육을 통해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계발해야 한다는 장애를 먼저 인정해야 하는 아픔간의 갈등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것이다.
한인사회에 장애인을 돕기 위한 많은 봉사단체와 비영리단체들이 구호에 ‘치료’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사용하고 있고 그 말에 부모님들이 장애자녀의 상태가 정상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에 불을 붙이고 있는 동안 장애를 가진 자녀들은 어느 한 순간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받을 수 없으며 비장애인보다 못한 존재라는 편견의 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다.
비 장애아동들도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이 못하는 것을 가르친다고 하지 치료한다고 하지 않는다. 장애를 가진 아동들도 ‘치료’가 아니라 그들이 모르는 새로운 것을 가르친다는 생각으로 우리의 시각을 바꾸고 먼저 그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포용할 수 없을까? 치료라는 말과 교육이란 말에는 이렇게 장애인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
김효선 교수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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