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부터 매스컴을 통해 들려오는 ‘워낭소리’에 눈을 크게 뜨고 뒤를 크게 열어놓고 듣는다.
워낭소리 촬영지 경북 봉화군 상운면 하눌리 산정마을과 나의 고향 경북 봉화군 상운면 가곡리 반송마을은 야트막한 야산 하나 넘어 이웃마을이다.
내 나이 너덧 살 아직 마을 밖을 못 나간 어렸을 적에 우리집 어른들이 ‘하눌’이라고 말을 많이 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거기에 우리 논이 있었다고 한다.
어른들은 하눌 들에 일하러 가시고 할매와 나는 집에 있을 때 건너 갑자네 밭에 검은 황소가 밭을 갈고 있어서 소들이 다 누런데 저기 소는 왜 검은지 너덧 살 어린 나이에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6.25 사변 때 마구간이 딸려 있는 방에 피난민이 살면서 그들로부터 많은 설움을 받은 황소가 너무 사나워져 이제는 암소를 길렀다.
황소를 팔고 사온 암소가 나이 많아 새끼를 낳지 못한다고 ‘들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일은 잘했다. 또 한 마리의 암소는 해마다 새끼를 낳지만 일은 들자만 못했다. 들자 소가 논 하나를 갈아놓고 다른 논을 갈 때 젊은 소는 미리 갈아놓은 논에 들어가 써레질을 하고 뒤따라 사람들이 들어가 모내기를 하여 소 두 마리가 바쁘게 일했다. 어른들이 소 두 마리 몰고 들에 나가시면 짚을 썰고 쇠죽 쑤는 것은 우리 형들 몫이었다. 형들이 학교 가느라 멀리 나가면 그 일은 내 몫이었다. 산에 꼴 먹이러 갈 때 한 마리만 몰고 가면 다른 소는 따라 왔다. 두 마리의 소에서 들려오는 워낭소리 땅그랑, 땡그렝 소리가 다르다.
마구간 여물통 안쪽 기둥에 들자 소 메어놓고 다른 기둥에 젊은 소 메어 놓으면 한 여물통에 들어있는 쇠죽을 서로 많이 먹으려고 입을 부딪치고 머리를 부딪칠 때는 칭그렁 캥그랑, 고요히 들리는 워낭소리는 어디 가고 꽹과리 때리는 소리다. 그렇게 온순하고 사이좋던 소들도 먹을 것 앞에는 서로 부딪친다.
농촌에서 자라면서 소 두 마리를 다뤄본 나에게 워낭소리는 추억 속에 깊이 남아있는데 인터넷 동영상에 최 어른님도 소도 흙에다 영혼과 마음을 다 두고 밭을 가신다. 젊었을 적에 최 어른님도 소도 우람한 체격에 튼튼하셨을 거고 가금 소가 콩밭에 콩을 뜯어먹거나 일탈하면 한 분은 때리셨을 거고 소는 맞았을 거다. 그 밭을 보니 산자락에 가려져 시야가 멀지 않아 우리 고향 특유의 좁은 골짜기 지형이다. 최 어른님을 태우고 소 달구지가 가는 길도 우리 고향길이다.
미국 땅처럼 멀리 지평선이 보여야 대지인줄 알았던 나는 좁은 골짜기 우리 고향이 대지라고 알지 못했다. 최 어른님과 늙은 소가 쟁기(봉화 사투리로는 훅쟁이)를 사이에 두고 서로 통하는 마음으로 밭을 가는 것을 보고 내가 저 흙에서 태어나고 저 흙이 나를 길러줘 저것이 나에게 대지하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대지를 보니 아버지 어머니가 이 몹쓸 나를 찾아오신 것 같다.
매일매일 매스컴을 통해서 워낭소리가 들리니 기쁘다. 그 워낭소리가 들리는 고향은 경부선 큰길가도 아니고 관광명소도 아니고 산골 오지라서 더욱 기쁘다.
그 워낭소리가 드디어 미국에 상륙했다고 들린다.
저 멀리 뵈는 나의 고향길/ 오, 그리운 내 아버지집(祖國)/ 나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워낭소리 들었네/ 저 망망한 바다 건너/ 워낭소리 듣던 그 집에/ 나 가리라 다시 가리라/ 워낭소리 들리네// 아득한 나의 갈길 다 가고/ 저 동산에서 쇠꼴 먹일 때/ 내 고생하던 모든 일들을/ 땡그랑에 잊으리/ 이 들이나 저 산에서/ 워낭소리 듣던 그 집에/ 나 가리라 다시 가리라/ 워낭소리 들으리
이민자들이 많이 부르는 교회 음악을 개작해서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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