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밤, 저녁식사를 마치고 일본과의 야구경기를 시청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이웃교회 목사님께서 서너 번 자신의 이름을 말씀하시는데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목사님의 음성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누구시지요? 누구시지요?”저도 반복해서 물었습니다. “김종호 목사님께서 가셨어요”라고 울먹이셨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바로 사흘 전 네팔의 박 선교사님께서 방문하셔서 김목사님과 셋이 새벽까지 교제했었습니다. 그때도 멕시코와 한국의 야구경기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김목사님께서는 다방면에 정통하셨습니다. 멕시코와 한국 선수들의 특징과 야구경기의 맥을 짚어 가면서 그것을 목회와 인생에 빗대어 말씀하시던 모습이 눈 앞에 선했습니다. 우리는 괜찮은데 혼자서 춥다고 제 외투로 무릎을 덮고는 목회의 꿈을 펼쳐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갑자기 목사님을 불러가셨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김목사님과 저는 26년 전 군대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김목사님은 평택 카투사 교육대의 영내 교회에서 군종사병으로 있었습니다. 지금도 군복을 입은 김목사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늘 꼿꼿한 자세로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단정한 모습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직장은 서로 달랐지만 광화문에 있는 교보빌딩에서 5년여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때도 사회 선배로서 친절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점심도 많이 얻어먹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대학시절 목회자로 서원하신 것을 늘 마음에 품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목회의 길로 가셨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저 역시 직장생활을 접고 김목사님께서 다니고 계시던 감리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김목사님께서는 신학교 시절에도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과 학문에 대한 남다른 소질을 발휘하셨습니다. 김목사님은 구약의 욥기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욥기에 대한 관심을 한 시도 놓지 않으셨습니다. “의인이 왜 고난을 받을까?” “선한 사람이 고통을 받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이 알 수 있을까?” ? 학문적 호기심이 많았던 김목사님은 욥기의 신비로운 동물 리워야단에 대한 논문을 쓰고 싶다는 말씀도 했었습니다.
모두 그렇듯이 김목사님의 이민목회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목사님은 늘 구약의 욥을 생각하면서 묵묵히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향해서 불평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늘 웃음짓고 자기보다 남을 먼저 걱정해 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도 김목사님의 속은 새까맣게 타 들어 갔었나 봅니다. 같은 동네 살면서도, 제 자신을 챙기느라 선배목사님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지 못한 것이 못내 죄송스러워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김목사님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언젠가는 그 속마음을 사람들이 알아주고,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실 것을 믿었습니다. 20여 년 전 군복을 입고 꼿꼿한 자세의 걸음걸이로 영내를 활보하던 모습 그대로 목회의 현장에서도 꼿꼿하게 자신만의 목회의 길을 걸어갈 줄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더 높고 크셨나 봅니다. 이 세상에서 쓰기에는 목사님의 성품과 믿음이 너무 고고해서 하나님께서 하늘나라로 서둘러 데려가셨나 봅니다.
이 세상에서 김목사님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립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 품에 안겨서 욥기 속의 수수께끼들을 모두 푸시고 기뻐하실 목사님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말과 행실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추한 모습을 보고 속상할 필요도 없이 의로운 자들만 모여있는 천국에서 학처럼 훨훨 날아오르실 목사님의 모습도 그려봅니다.
김목사님! 하늘나라에서 우리 후배들이 목사님의 못다 한 일을 모두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두고 가신 사모님과 두 따님을 위한 기도가 제일 앞에 있으셔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품속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실 목사님을 생각하며 천국의 소망을 새롭게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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