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퍼슨 홀 아래는 졸업생과 축하객들로 넘쳤다. 청년은 자기가 졸업생 중 한 사람이란 것을 잊은 것처럼 흐려져 가는 하늘을 바라봤다. 청년은 지난 4년이 떠가는 구름보다 더 별 볼일 없게 생각되었다. 눈꼽만큼 늘어난 지식이란 것도 그렇고, 몇몇 교수의 얼굴을 익힌 것과 할 일 없이 아파트에 드나드는 몇몇 친구를 제외하고는 결국 이 이름난 대학도 졸업장 하나의 가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라고 청년은 상심한 얼굴로 땅 아래로 얼굴을 떨어뜨렸다. 빨간 장미 꽃잎들이 푸른 잔디 위에 널려져 있었다.
청년은 전송 온 부모님의 얼굴을 계면쩍게 바라봤다. 어머님보다 아버지의 눈에서 이슬 같은 눈물을 보자 얼른 눈길을 돌려 금세 떠날듯 큰 날개를 휘적이는 항공기로 돌렸다. 어머님이 청년의 손을 따뜻하게 잡았다. 그리고 말문을 열지 못하고 청년의 손을 힘을 주어 잡았다. 청년은 다른 손으로 어머님의 손에 포개며, “어머니, 걱정 하지 마세요. 세상에 나서 한 번도 못 해본 일을 하려는 거예요.”
상의를 벗었어도 땀은 몸통을 타고 바짓가랑이로 흘러내렸다. 숨이 막힐 지경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을 한 여인이 스쿠터를 청년 앞에 멈췄다. “오셔서 감사합니다. 피난민 보호소에 여러분이 눈 빠지게 선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청년은 손바닥만한 스쿠터 뒷좌석에 앉았는데, 여인은 말도 없이 갑자기 출발하는 바람에 청년은 짐을 떨어트릴 뻔했다. “저를 잡으세요.” “괜찮습니다.” 시원한 도시 바람이 청년의 얼굴을 간질렀다.
24명의 어른과 아이들이 조그마한 가정집 같은 대문 앞에서 청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눈망울이 빤짝였다. 자세히 보면 모두 깡마른 모습 속에 가느다란 흰 뼈가 보일 것만 같았다. 억센 이북말이 청년에게는 신기했다. 약간의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청년은 “안녕들 하시겠습니다”라고 인사하자, 어린아이까지 깔깔대며 웃어 댄다.
적은 돈으로 세끼의 장을 보는 것, 영어를 가르치는 것, TV 사용부터 새 세상을 사는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것은 쉬울 것만 같아도 그렇지가 않았다. 식구들끼리 다투는 일이 가장 돕기 힘든 일이었다. 청년은 해본 적이 없는 성경을 읽혔다. 조금씩 싸움이 줄어갔다.
청년은 자기와 똑같이 생기고 똑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이 아주 멀고 먼 나라, 이상한 나라, 살 수 없는 나라, 마음과 몸이 병든 나라에서 태어나고 아직도 잊혀져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곳에 내가 있음은 당연한 일이라고 자신을 독려했다. 아버지의 눈물을, 어머님의 따뜻한 손길을 위로 삼으며,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들은 새로운 세상에 익숙해 갔다. 깍지 않은 머리가 길어서 어깨에까지 내려왔다. 평화가 청년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떠날 때처럼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중나오셨다. 어머니는 왈칵 눈물을 흘리셨다. 아버지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고 차근한 목소리로 “네가 키운 아이가 이 동네로 입양왔지. 그 아이는 공부도 잘 따라하고 태도도 아주 공손해서 양부모와 학교에서 자랑꺼리지.”
훈훈한 바람이 청년의 머리를 흔들고 지나갔다. 청년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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