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에서 받은 교과서 외에 내가 처음 받은 책은 6.25 피난시절 제주도 산중턱에 세워진 천막교회 여름성경학교에서 받은 사복음서인 것 같고 내가 처음 산 책은 분명히 몰로카이 성자 ‘성 다미엔’인 것이 확실하다. 내가 다니던 서울 정동교회 학생부 헌신예배에 강사로 오신 저자인 이일선 목사께서 설교 도중에 소개해준 책인데 어찌나 감동이 컸던지 다음날 월요일 학교가 끝나자마자 전차를 갈아타고 종로 2가에 있던 기독교서회 서점에 가서 있던 돈을 털어 380원 주고 산 그 책이 분명하다.
이일선 목사는 목회자이기보다 나명문제를 연구하는 의사로 당시 더 유명했던 분이다. 특히 아프리카 원시림 가봉 람바렌에서 의료봉사를 하면서 1953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된 슈바이처 박사의 병원을 직접 찾아가 슈바이처 박사와 함께 병원일을 돌보고 와서 ‘슈바이처의 생애와 사상’을 펴내어 화제가 되었고, 특히 슈바이처 박사와 병원에서 겪은 이런저런 인간적인 이야기들은 당시 학생들에게 감동과 감화를 부어 의학과 신학을 택하는 친구가 많았다.
몰로카이 성자 다미엔은 이런 분이다. 태평양에서 낙원이라고 불리며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하와이 몰로카이 섬에는 죄인 아닌 죄인으로 감옥 아닌 감옥에서 저주받은 것처럼 살아가는 문둥이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적 희생정신을 심장에 간직한 다미엔이 자원하여 들어가 천형의 벌이라고 멀리하는 문둥병 환자, 그들의 질병과 정신적 괴로움을 치료하고 간호하며 1864년부터 1889년까지 25년을 그들과 같이 먹고 마시다 마침내 나병환자가 되어 희생의 제물이 된 벨기에의 신부님이다.
한 번은 다미엔이 교회에 나가 환자들 앞에서 참된 자유와 평화에 대해서 설교하였다. 그러자 환자들이 “당신 같이 성한 사람이나 자유가 있고 평화가 있지 우리에게 무슨 자유이며 평화이냐”고 반정대는 소리를 들었다. 이 말을 들은 다미엔은 자기 방에 들어와 조용히 꿇어 엎드려 “하나님이여, 나를 문둥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을 건지기 위하여 문둥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나가 넘어지는 환자를 보면 쫓아가서 부둥켜안고 일으켜 세웠으며 상처를 보고는 씻고 고름을 긁어내주었다. 그러다 그의 기도대로 다미엔에게 문둥병 균이 감염되었다. 나병환자가 된 것이다. 문둥병에 걸렸다는 나병 전문가 아님 박사의 진단을 받고 다미엔은 주교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어 자기 신앙의 체험을 고백하였다. “저는 지금 문둥이가 되었습니다. 나의 빛나는 희망은 마침내 실현되었습니다. 벌써 저는 땅위에서 뵐 수 없게 되었고 천국에 가서 뵙게 될 것으로 말씀 드립니다. 저를 위하여 더욱 기도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다미엔은 그 몸에 십자가의 흔적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말에도 옆구리에도 그리스도의 피 묻은 흔적이 생겼다. 그의 손에도, 그리고 이마에도 못에 찔리고 가시에 찔린 주님의 흔적을 가졌다. 이제 그의 거룩한 생애의 희생은 빛나는 면류관으로 바꾸어지고 그가 흘린 핏방울은 면류관의 진주로 장식될 것이다. 드디어 다미엔은 무릎의 관절이 아프고 기거동작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저자 이일선 목사는 결론에서 이렇게 쓰고 있었다.
“주님의 발에 입 맞출 사람은 또 없는가? 다미엔과 같이 지위도 명예도 버리고…”
아, 그랬다. 다미엔의 신앙과 뜨거운 심장이 내 마음에 불을 일으켜 눈물을 흘리며 읽고, 읽고, 헌신을 다짐하며 또 읽었던 생각이 이제 왜 이리 그리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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