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계절 5월의 싱그러운 향훈은 벌써 짧은 팔소매의 옷을 걸치게 하고 있다.
3월초부터 고국에 계신 오빠의 건강에 이상이 있음이 전해오면서 우울한 날 속에 아침저녁으로 국제전화가 불이 났다. 마침 난 나의 책 출판기념회의 날짜가 정해져 있는 터라 오빠의 병문안을 당장 서두를 수 없어 얼마나 가슴이 탔는지.
오빠의 수술날짜가 잡히자 우리 집안엔 큰 비상등이 켜졌다. 오빠는 정말 우리집안의 기둥이다. 요즈음 같이 의리도 책임감도 헌신짝 같이 버리는 세상에 부모님 같이 형제들의 뒷바라지를 마다않고 해온 공로자다.
전에는 알지도 듣지도 못한 담도암이란 특이한 병 진단을 받고 서둘러 수술을 했고, 수술 상처자리가 아물지 않아 진저리친 40여 일간의 병원신세를 겨우 벗어나 퇴원해 집에서 요양할 때 난 어둠이 깔리는 시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가족들은 간호하느라 지쳤을 테니 절대로 공항마중을 나오지 말라고 당부하고 공항버스로 오빠네 집에 도착했다. 누워있던 오빠는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는데… 미안해 하지만 이제는 고국방문시 번거롭게 공항으로 마중 나오는 것은 촌스러울(?) 정도로 여러 코스의 공항버스 시스템이 잘 되어있어 복잡한 수고는 서로가 안하는 편이 오히려 편함을 느꼈고 장려해야할 문제 같다.
초췌해진 오빠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오빠의 황금 같았던 전성시대는 어제의 이야기가 되는 것인가. 육신이 쇠잔해갈수록 마음은 더 간절히 삶에 대한 애착이 생기는 법, 그것은 눈물겨운 염원이다. 제일 오빠의 괴로움은 불면증이다. 아무리 잠을 청하려고 해도 매일 밤 뜬눈으로 밤을 밝히니 정말 사는 게 아니다. 창으로 화창한 햇볕이 홍수처럼 쏟아지는데 어느 황량한 겨울 길목에 홀로 서있는 듯 오빠는 초점 잃은 젖은 눈으로 이제 병든 자신을 생각하며 아, 이게 인생인가 비애에 짓눌린 모습이 선명해 가엾기도 하고, 우리의 인생이 풀잎에 내려앉은 이슬 같은 것이고 태양이 떠올라 이슬을 말려버리듯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겠는가.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있으니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다고 호소하고 팔다리도 힘을 쓸 수가 없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사지를 해야만 했다. 특히나 서울의 여동생은 손목인대가 늘어난 줄도 모르고 계속 마사지를 해드리다 병을 얻고 계속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니 안쓰럽기 그지없다. 정말 환자 간호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비즈니스 하는 남동생도 어렵게 시간을 만들어 형 병문안으로 고국으로 달려갔고 온가족과 형제들의 열성적인 간호 힘인가 오빠는 점점 병세가 호전되어 며칠 전부터는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첫 항암치료를 받던 날 온가족은 가슴을 조이며 항암 부작용에 신경을 곤두세웠고 인터넷에서 ‘암 치료가 시작됐을 때 암환자가 취해야 할 7가지 각오’를 찾아 읽으며 참고로 오빠에게도 이메일했다. -(1)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라 (2)부작용을 두려워하지 마라 (3)치료 중에는 열심히 먹어라 (4)새로운 삶의 방식을 디자인 하라 (5)의료진을 만날 때는 항상 질문목록을 준비하라 (6)경험자의 체험담을 귀담아 듣고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라 (7)소중한 지금 이 순간을 낭비하지 말라.
금년 말에는 확실한 항암치료 효과 속에 무조건적인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덤으로 사는 제2의 오빠의 삶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온가족의 우울함이 완치의 기쁨으로 깨끗이 사라질 것을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