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죽음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였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중략)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 다오.
(하략)
-모윤숙 시집 ‘풍랑’(1951)에서
박창호
죽어서 말하는 호국영령들! 분명히 저들은 화자(話者)속의 시인의 말처럼 죽어서야 비로소 말문을 연다.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 죽어서 말하는 대한민국 아들들의 말! 저들의 청춘을 불사른 영혼들을 위해 조국과 동포가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
작가이며 언론인이었던 모윤숙 시인은 일제 강점기인 1910년 함경남도 원산부에서 태어나 1990년 6월 7일 서울에서 타계한 대한민국의 귀한 시인이요, 작가요, 언론인이다. 그의 아호는 영운(嶺雲)인데 일찍이 개성의 호수돈 여자고등보통학교와 경성부의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명신여고, 배화여고 교사직에 근무했고 1931년에 ‘피로 새긴 당신의 얼굴을’을 ‘동광’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초기부터 해외문학에 관심이 깊었던 모윤숙 시인은 1937년에 발표한 일기체의 장편산문집 ‘렌의 애가(哀歌)’로 대중의 가슴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가지 좀 애석한 점이 있다면 그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노천명 시인과 함께 친일파로 분류됨으로써 일제강압기에 민족의 혼을 고수하지 못한 작가로서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는 사실이라 하겠다.
대한민국 국군이 서울을 수복한 뒤 선무방송에 참여해 종군하기도 한 시인의 화려한 경력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장, 제8대 국회의원, 문학진흥재단 이사장(제5공화국에서) 직을 역임했고, 수상경력으로는 국민훈장 모란장, 3.1 문화상, 그리고 1991년에는 금관 문화훈장이 추서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시집으로 ‘빛나는 지역’(1933), ‘렌의 애가’(1937), ‘옥비녀’(1947), ‘풍랑’(1951) 등이 있고 수필집으로 ‘내가 본 세상’(1953), ‘포도원’(1960), 그리고 ‘구름의 연가’(1964)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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