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키에 왼쪽 어깨가 오른쪽보다 약간 처진 옆으로 기울어진 체격으로 딸 여섯에 막내로 아들 하나 두신 아버지는 일곱 자녀에게 언제나 인자하고 부드러운 분이었다. 아들을 선호하는 세상인데도 아버지는 유일하게 그렇지 않으셨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시는 아버지가 담배 만드는 회사인 전매청 유아실장으로 계셨는데 실장이라고 하나 유아실 청소를 하고 여자 직공들이 아기 젖 먹이면서 점심식사를 하기 때문에 음료수도 준비한다. 12시 점심시간이 되면 일제히 작업을 중단하고 아기가 기다리는 유아실로 엄마들이 뛰어오는데 천천히 여유 있는 걸음으로 걸어오는 엄마는 없고 마치 같은 유니폼 입은 달리기 선수들의 경기장 같이 열심히 뛰어온다.
한번은 아버지를 도우고자 물주전자를 들었다가 쇳덩이 물주전자를 들자말자 넘어져 바닥을 뜨거운 물바다로 만들어 일감을 더 만들어드린 적이 있었다. 그 물주전자가 그렇게 무거운 줄을 몰랐다.
엄마들은 잠시라도 빨리 젖을 먹이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온다. 점심 휴게시간은 한 시간. 그 한 시간이 엄마와 아기들에게 천국이다. 우유가 귀하던 때라 오후 3시에 잠깐 한 번 더 엄마 젖을 얻어 먹인 후 베이비시터들은 아기를 업고 유아실을 떠나 제각기 집으로 돌아간다. 나도 내 동생 등에 업고 여직공으로 일하던 엄마 젖 먹이러 전매청에 다닌 재미있는 경험이 있다.
구두 코 끝이 반짝반짝 에나멜로 된 아버지 구두 닦는 일은 식구들이 내게 일임한 즐거운 내 몫의 일이었다. 교회 가실 때나 혹 외출하실 때 나는 아버지 구두를 품에 안고 엄마가 건네주는 천 조각에 구두약을 발라 빤질빤질 광나게 한 뒤 나가실 때 신으시게 마루 끝에 나란히 나란히 편리한 방향으로 놓아두었다. 내가 닦은 구두 신고 대문을 나서시는 미소 어린 아버지 뒷모습 바라보고 서있던 나. 자랑스럽고 흐뭇한 내 마음 아는 사람 엄마 외에는 우리 식구 중 아무도 없었다.
저녁 5시 가까이 되면 철둑길 건널목 넘어 퇴근해 오시는 아버지 마중 나간다. 뙤- 뙤- 멀리 기적소리가 나고 지축이 울렁울렁 울리기 시작하면 건널목 수위 아저씨가 수위실에서 나와 차단기를 내린다. 하늘 높이 올라가 있던 차단기가 내려와 건널목을 막으면 아무리 바쁜 사람도 철둑길 밖으로 나와 기차가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차단기에 막혀있는 우리들을 보고 기차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손을 흔들고 어떤 사람들은 얼굴을 밖으로 내밀고 우리를 부르며 팔을 흔든다. 그때 우리도 “만세” 두 팔을 높이 들고 화답하는 대구 칠성 시골 철둑길 건널목 재미나는 풍경이었다. 기차 마지막 칸까지 다 지나가고 차단기가 하늘 높이 다시 올라가면 저 쪽에서 기다리시던 아버지가 이쪽으로 넘어 오시는 것을 건널목 중간에서 만날 때가 있다. 사람들 틈에 끼어 넘어오시는 아버지 모습을 보자마자 마구 뛰어가 품에 덥석 안긴다. 내 손을 잡은 아버지는 급한 발걸음으로 “빨리빨리” 하시며 건널목을 속히 통과하신다. 꽁꽁 얼었던 손은 따뜻한 아버지 손에 잡히자 금방 녹아 춥지 않게 된다. 기찻길 건널목에서 아버지를 만나 집에 오는 날은 내 두 다리는 풀쩍 풀쩍 춤을 추며 땅을 밟지 않고 둥 둥 공중에 떠서 집에 와 버린다.
시간과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버지 손잡고 나 스스로 기쁨을 뿌리면서 집으로 돌아오던 승리의 생생한 추억이 푸른 솔바람 타고 찾아오면 그림 같은 그 길이 눈을 감아도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고요한 아버지 손은 나의 우주요 내 고향이요 사랑의 이음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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