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지금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보니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분들이 너무 나도 많이 있다.
그 여러분 고마운 분들 가운데 최향숙 권사님이 생각이 난다. 따님의 힘든 이민 생활을 도우시겠다면서 두 외손자 아이를 보러 한국에서 방문 오신 권사님이셨는데 알고 보니 나와 같은 교단의 덕망 있고 존경 받던 선배 목사님의 사모님이기도 하셨다.
몇 해 전에 목사님을 하늘나라에 먼저 보내시고 더욱 더 하늘나라를 사모하시며 오직 기도로 사시던 귀한 분이셨다. 목사님을 40여년 모시던 사모님이시라 목회에 남다른 관심과 애착과 노하우가 대단한 어른이었다. 아직 이민 목회 초년병이던 나에게 어머님 같고 이모님 같으며 어쩌면 큰 누이 같이 자상한 분이셨다.
어느 날 혼자 계신 사모님을 심방 간 우리 내외에게 이렇게 두 분이 심방 다니는 모습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난다고 하시면서 ‘사모님 목사님 건강 잘 챙겨드리세요. 목회자에게는 건강이 제일이에요. 목사님 안 계시면 사모는 헛것이에요’하시던 권사님 그 모습이 오늘 따라 왜 이리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에는 본문 설교에만 치중하던 내 설교가 딱딱하게만 들리셨는지 아니면 교인들의 반응 때문이었는지 ‘목사님, 우리 목사님이 그러시던데 설교에 예화는 집의 창문 같답디다. 창이 너무 많으면 건물이 부실해 보이지만 창문이 너무 없으면 어둡고 답답하답디다. 그리고 목사님 부흥회 너무 자주자주 나가지 마세요’라며 얼굴이 홍당무 같이 붉어지시면서 어렵사리 충고해 주시던 고마운 분이셨다.
또 어느 날에는 친교 시간에 나에게 가까이 오시더니 ‘목사님,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삽데다’ 좀처럼 평소에 쓰시지 않으시던 강한 이북 사투리로 들려주신 그 말씀은 이제 고백이지만 내 이민 목회에 알게 모르게 좌우명이 되었다. 더구나 그 분과는 잊을 수 없는 비밀이 하나 더 있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자체 건물을 갖기 위해 건축 헌금을 작정하고 실행하던 시기에 권사님이 오셨다.
네 남매를 공부시키며 경제적으로 힘들게 지내는 우리 형편을 늘 걱정하시던 권사님은 목사가 솔선수범 하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한동안 내 이름으로 건축 헌금을 내어주셨다.
당시는 건축 헌금을 격려하고 독려하기 위하여 주보에 명단을 일일이 내고 호명도 하던 때였는데 한 주도 빠짐없이 내 이름이 건축 헌금 명단 첫 머리에 늘 나는 것이었다. 누가 내는 것일까 나도 모르고 가족도 모르게...
그런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바로 최향숙 권사님이 내주신 것이었다. 이래저래 너무너무 나도 고맙고 감사함이 그지없는 분이었다. 그 사랑 때문에 힘든 워싱턴 목회 10년을 한 교회에서 무사히 마치고 더 큰 도시 뉴욕으로 올라 갈 수 있었다.
언젠가 하늘나라에 가서 최 사모님을 반가이 만나 뵈옵고 지상에서 드리지 못했던 모든 감사의 인사를 꼭 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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