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31일 마지막 밤을 보내는 마음은 너무나 허전하고 슬프고 가슴 아팠다. 8개월 전 기억들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늦은 밤이었다.
지난 봄, 꽃피는 4월에 병환중인 오빠를 뵙기 위해 급히 귀국길을 서둘렀다.
초췌해진 오빠의 모습을 대하며 오빠의 황금 같았던 전성시대는 어디로 가고 어느 황량한 겨울 길목에 홀로 서있는 듯 오빠는 초점 잃은 젖은 눈을 하고 있었다.
아, 이게 인생인가 비애에 짓눌린 모습이 선명해 얼마나 가엾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의지가 강한 오빠는 차차 회복이 되면서 가만히 누워있으면 더 까부라진다고 러닝머신 위에 올라 힘겹게 걷기도 하고 또 차고에 세워둔 차를 천천히 몰고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과 쇼핑도 하고 입맛 돋우는 식당을 찾아내 입맛에 맞는다고 좋아라하며 음식 한 그릇을 다 비우던 오빠였다.
힘겨운 항암치료도 마다않고 온가족이 합심해 병원을 오가며 8개월 동안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견디면서 정말 완치의 기쁨을 기대했건만 갑작스런 호흡 곤란으로 급히 응급실에 입원 보름 만에 다시 올 수 없는 길을 가셨으니 이런 청천병력 같은 70줄에 갓선 오빠의 기막힌 별세소식에 몸 둘 바 없다.
인생이 무엇이고 생활이 무엇이고 삶에 시달려 정신없이 살아온 삶에서 이토록 허망하고 허탈한 느낌을 어디에다 호소하나?
죽음이란 모든 즐거움도 괴로움도 삶이 끝이 나는 것이고 틈새 없는 삶의 일정에 인생은 물거품처럼 부질없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백년천년 살 것처럼 계획을 세워 그 목표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지만 결국은 후세에게 남겨두고 숨을 거두는 미완성의 인생임을 여실히 보여 줌은 나의 혈육의 죽음이기에 가슴이 더 찢어진다.
오빠가 운명하는 그 시간 믿기 어려운 일을 경험했다. 콤팩트디스크에서 흘러나오는 성가 곡(曲) ‘오 거룩한 밤.’ 성탄절이면 늘 즐겨듣던 성가(聖歌)가 한 번도 슬픈곡(曲)이라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그 시간 가슴을 에이는 슬픈 음악으로 변해 오빠가 갑자기 보고 싶고 가엾어 어쩌면 좋은가.
통곡하고 울부짖던 그 시간이 나중에 따져보니 오빠가 운명한 바로 그 시간임을 알고 오빠가 잠시 큰 동생에게 영혼이 왔다간 것으로 믿고 싶어진다. 요즈음 같이 의리도 책임감도 헌신짝 같이 버리는 세상에 우리 형제들에게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충성스러운 집안의 어른이요 기둥이였던 오빠였다.
장례식이 할러데이 시즌으로 한국행 비행기 좌석을 구할 수 없어 발을 구르던 이곳의 네 동생들은 한국 장례시간에 맞춰 추모 예배를 드리며 오빠를 추억하며 서로서로를 위로했다. 모두 짝채운 1남3녀의 아버지로 여덟 손자의 할아버지로 또 사랑하는 아내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나 많았을 텐데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했다니 안타깝다.
우리들의 인생사!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 있으면 반듯이 죽음의 날도 있겠지만 죽음이란 대책 없이 쉽게 우리를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은 어차피 제한된 시간을 살다가는 인생인 것도 깨달았다. 오빠는 우리 곁을 떠나 한줌의 재로, 육안으로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으나 무더운 여름 그늘이 되어주는 키 큰 나무처럼 추운겨울에는 따뜻한 햇볕으로 우리 형제 가슴속에 살아있는 더없이 든든한 존재이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유용상 오빠를 보내며 지금은 고통 없는 천국에 먼저 가신 부모님을 만나 평안함과 기쁨을 누리고 계실 줄 확실히 믿고 훗날 천국에서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슬픔을 달랜다.
유설자
워싱턴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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