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위기는 대통령이 상하 양원을 통과한 부채상한 증액안에 마감시한인 지난 2일 서명함으로써 간신히 비껴갔다. 사람들은 미국이 급한 불을 끄고 재앙을 넘겼다고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이틀이 지난 4일 주가는 폭락하고 국제신용평가기관은 미국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였다. 2차 대전 이후 세계경제를 주름잡고 호령하던 최강의 부자나라 미국의 위상이 쇠망기에 이른 로마제국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클린턴 정부 때 재정부문에서 흑자를 기록하며 잘 나가던 나라살림이 부시정권 8년 동안에 멍들어가면서 거덜나는 쪽으로 접어들었다. 부시정부가 2001년, 2003년, 2005년 세 차례에 걸쳐 부자감세를 단행함으로써 나라의 재정수입이 크게 줄어든 데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천문학적인 군사비를 지출, 재정압박을 가중시켰다. 거기다가 제약회사들의 로비를 받아들여 그들에게 약값 책정의 자유를 허용함으로써 미국 약값은 세계최고가로 치솟아 국민의료비를 높였고 메디케어 예산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았다.
정부지출은 늘어났는데도 부유층의 세금은 줄여놓았으니 적자폭은 확대되었다. 그런데도 부자감세의 명분이었던 경기부양 효과는 일어나지 않았고 침체는 계속되었다. 국채발행으로 나라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 지금은 GDP 14조5,000억달러를 넘어섰다고 한다.
적자해소를 위한 이번 협상에서 공화당은 재정을 튼튼히 해줄 세금 쪽은 손을 대지 않은 채 정부지출삭감에만 초점을 맞춰 오바마를 압박하는 총공세를 폈다. 그들은 일부 부채상한 증액안에 동의해주는 대신 앞으로 10년 동안 정부지출을 대폭 삭감하기로 대통령의 양보를 얻어내 부유층이익을 지켜냈다.
대부분 정부지출은 서민대중에 돌아가는 몫으로 된다. 그 동안 대통령과 민주당정부의 정책을 지지해온 폴 클루그만 교수도 이번 협상결과에 분개하였다. 그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초기 부시 정부 때의 감세정책을 연장해준 첫 번째 실수를 저질렀고 금년 봄 공화당의 정부 폐쇄위협에 굴복한데다 이번 부채상한 증액 협상 때 디폴트도 안중에 없이 밀어 부치는 공화당의 ‘공갈’에 또다시 항복함으로써 미국을 ‘바나나 공화국’(독재자와 외국자본에 장악된 소국)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비난하였다.
부자감세를 주장하는 공화당의 명분은 “정부는 국방과 치안유지만 전념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경제와 교육·의료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부자에게 높은 세금을 씌우지 말고 그들에게 돈을 몰아줌으로서 ‘트리클 다운’효과가 일어나도록 하여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주장인데 콜럼비아 대학의 스터글리츠 교수는 레이건-대처 이래 미국과 영국의 신자유주의는 성장대신 장기불황과 실업 등 쇠락으로 특징지어지며 양극화만 심화시켰다고 주장하였다.
실제 지난 10년 동안 미국의 상위1%의 소득은 18% 오른 대신 남성 블루칼라 노동자의 수입은 같은 기간 12% 감소했다는 공개된 자료가 이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정치가 편협한 계급이익에 몰입되어 갈등하는 미국에 성장과 번영의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고 있다.
이광영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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