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1930년대 하와이 상류층 인사들은 오아후내 인근에서 찾을 수 있는 휴양지로 어디를 택했을까? 답은 의외로 바로 ‘펄 시티’ 이다.
현재 카메하메하 애브뉴까지 이어지고 있는 펄 시티의 행정구역은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전까지는 미들 락까지 이어지는 반도를 지칭하는 단어였고 1890년 벤 프랭클린 딜링햄이 펄 시티를 건설하고 철도를 깔았을 당시 부자들은 해안선에 인접한 이곳에 집을 지었다.
하와이가 미국령이었으나 주(州)로는 승격되지 못한 상태였던 1924년 설립된 ‘펄 하버 요트 클럽’은 정기적으로 파티와 무도회, 요트경주대회 등을 개최하며 당시 지역 일간지 호놀룰루 스타-불레틴이 소개한 상류사회 최고의 모임장소로 꼽히기도 했다는 것.
하와이의 첫 중국인 백만장자로 알려진 천 아퐁의 아들 알버트 아퐁이 자신의 2층짜리 저택을 펄 하버 요트 클럽에 매각하면서 바다와 사탕수수 농장이 내려다 보이는 5에이커 부지에 자리한 고풍스런 맨션은 클럽하우스로 탈바꿈 했고 당시 하얀 모자와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들과 맥고모자와 정장차림의 신사들이 이 곳을 애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펄 하버 요트클럽 관계자들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전에는 딜링햄, 캐슬, 쿡, 돌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하와이 5대 재벌들과 가족, 그리고 하와이 왕족의 후손들이 회원으로 활동했고 클럽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20-1930년대에는 헐리우드 스타들이 신혼여행을 보내기 위해 즐겨 찾는 곳으로도 각광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34년에는 클럽 회원이었던 듀크 카하나모쿠가 해롤드 딜링햄과 태평양 횡단 요트경기를 벌여 완주에 성공했고 이듬해에는 당시 중령이었던 조지 패튼 장군이 자신의 요트 ‘아크투러스’호를 캘리포니아에서 직접 몰고 와 펄 하버 요트클럽에 가입한 후 부임지인 포트 셰프터로 향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미 해군이 펄 시티 반도 일대를 군용으로 접수하면서 클럽하우스도 군 당국에 넘어갔고 이후 회원들은 와이키키 초입에 위치한 알라와이 운하에 임시 보트창고를 짓고 1945년에는 클럽명칭을 ‘와이키키 요트 클럽’으로 변경하기에 이른다.
펄 하버 요트클럽의 클럽하우스는 전쟁이 끝난 후 철거됐고 지금은 반얀나무 밑에 주춧돌만 남은 상태이다.
아직까지도 ‘신생’ 와이키키 요트클럽은 각종 경주대회와 강좌, 행사 등을 개최하고 있다. 와이키키 요트클럽의 연 회비는 60달러이다. 자세한 정보는 공식 인터넷 웹사이트 http://www.waikikiyachtclub.com 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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