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work)과 노동(labor)은 다르다. 사회 평론가 루이스 하이드의 책 ‘창의력과 예술가’에 따르면 그 둘의 차이점은 이렇다. “일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에 있다.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용접하고, 병원에서 회진하며, 농장에서 수박을 재배하는 것은 일이다. 그렇지만 아이를 키우고, 시를 쓰고, 새로운 과학 이론을 찾아내는 것은 노동이다.
노동에도 대가는 따르지만 일에 비해 그것을 정확하게 계산하기 어렵다.”
일이 의도하는 것을 성취하려고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활동이라면, 노동은 불확실성으로 점철되어 노동만이 지닌 리듬을 익혀야 하는 창의적인 행동을 요구한다. 대학 지원서 에세이를 쓰는 것은 노동이다.
노동절(Labor Day)까지 모든 지원 대학의 에세이를 써놓겠다고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다짐해도 글쓰기 리듬을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헛수고에 그치고 만다. 시간에 쫓긴다고 노동을 일로 전환시킨다면 무엇이 나올까. 그것은 지원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갖고 찾아온 문하생에게 헤밍웨이는 “집에 가서 먼저 냉장고 청소부터 시작 하세요”라고 말했다. 노동은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영국의 소설가 이언 매큐언은 ‘솔라’를 쓰기 위해 캠브리지 대학을 방문하여 물리와 수학 교수들로부터 양자역학을 배웠고, 콜로라도주에 소재한 재생에너지 연구소에서 조언을 얻었으며, 노르웨이 해안을 찾아가 빙하계곡(fjord) 형성과정을 연구했다. 책 한 권을 저술하기 위해 5년 이상 유럽과 미국을 왕래하며 필요한 문헌과 자료를 섭렵한 것이다.
처음부터 생성된 명품 노동은 없다. 고난도 기술로 도마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낸 양학선은 2초를 위해 수년간 노동했다. 과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찾아낸 제임스 왓슨은 “과학적 발견은 지겹고, 밋밋한 책을 접하며 외로운 실험실에서 자신과 싸움으로 가능하다”라고 피력했다. 그런 창의적 돌파구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원서 에세이를 쓰는 학생들은 돌파구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보려는 일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버드 입학 에세이 50’ 같은 책을 구입하여 “나도 그렇게 비슷하게 쓰면 되겠지. 나라고 안 될 리 없지”를 되 뇌이며 지름길을 찾아본다. 일단 컴퓨터 앞에 앉아 흉내를 내보지만 이미 수십 번 교정과정을 거쳐 출판된 에세이와 자신의 글 사이에 존재하는 협곡을 보게 된다. 그런 자신을 돌아보면 기다리는 것은 짜증이다.
“나는 글 쓰는 재주도, 지구력도 없지. 적당히 써도 내 점수로는 얼마든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어. 차라리 올림픽 게임이나 보자”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런 과정을 목격한 부모는 “넌 게으르다”라는 꼬리표를 달아준다.
콜레스테롤이 혈관에 축적되어 혈압이 올라가고 심장의 출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고 해서 심장을 향해 “넌 게으르다”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게으른 심장이 없듯 게으름을 타고 난 인간도 없다. 인간은 무엇인가 만들고, 짓고, 표현하기를 원하고 그것을 실행한다. 다만 개인에 따라 소요되는 시간이 다를 뿐이다.
에세이 출력이 떨어진다면 지원자는 자신에게 세 가지를 물어야 한다. ▲게으름은 꾸짖는 자의 의견 아닌가. ▲지금 나는 노동을 하고 있을까 일을 하고 있을까. ▲노동절은 왜 Work Day가 아니고 Labor Day일까.
대니얼 홍 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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