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에 대한 관심이 한창 고조되던 90년대 한국에서는 웃지 못 할 일들이 있었다. 트럭들이 농지에서 서울로 채소와 과일류를 직송해왔는데 벌레가 많았다. 전 같으면 주부들이 질색을 할 일이었다. 하지만 배춧잎에 붙은 배추벌레 등 이런저런 벌레들은 그 채소가 화학비료 안 쓴 ‘유기농’이라는 증거가 되어서 오히려 환영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농부들이 일부러 벌레를 잡아서 채소나 과일 사이에 집어넣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화학비료와 살충제가 선진 농업의 일등공신으로 대우를 받던 시절이 있었다. 벌레 먹은 자국 하나 없이 탐스럽고 굵직한 과일과 채소들이 수확되면서 재래식 농법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이 되자 논에서 메뚜기가 사라지고 들에서 개구리며 뱀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구 뿌려댄 화학성분이 생태계를 파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인체에는?” 하는 불안이 불러온 것이 유기농법에 대한 관심이다.
미국에서는 40여년 전 유기농 운동이 시작되었다. 2차 대전 후 미국의 농업은 거대 산업으로 발전했다. 중서부의 광활한 농지에 화학비료와 살충제가 대량으로 살포되고 농작물이 대규모로 수확되었다. 엄청난 양을 수확해 저장하고 트럭으로 전국에 운송하다보니 과일들을 미리 따야 했다. 덜 익은 과일들은 운송해 가는 트럭 안에서 익었다.
1970년대 캘리포니아의 몇몇 요리사들은 “이 맛이 아닌데…” 하면서 재래식 농가를 찾기 시작했다. 환경을 생각하면서 작은 규모로 농사짓는 유기농 농부들을 찾았다. 좋은 토양에서 화학비료 쓰지 않고 재배해 잘 익었을 때 수확한 과일과 채소는 맛부터 달랐다.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캘리포니아 유기농 관련법이고, 이것이 기초가 되어 미전국의 유기농 기준이 만들어졌다.
지난 주 스탠포드 대학 연구진이 유기농 식품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한 것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유기농 식품이 일반 식품에 비해 영양 면에서 별로 나을 게 없다는 내용이다. 연구진은 기존에 발표된 237개 관련 연구를 분석해 이런 결론을 내렸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기농’은 많은 소비자들에게 ‘갈등’이 되고 있다. 건강에 좋다고 하니 ‘유기농’을 사고 싶기는 한데 가격표를 보면 선뜻 손이 안 가는 것이다. 지난 2011년 퓨 리서치 센터 조사에 의하면 유기농 식품을 정기적으로 구매하는 소비자는 미국인의 26%. 나머지 74%가 유기농을 구매하지 않는 이유는 주로 ‘가격’. 값이 좀 싸면 모두가 유기농을 선택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유기농이 특별히 좋은 것은 아니다’는 결론이 나오자 소비자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일반 식품을 사는 소비자는 안도하고, 유기농 단골들은 ‘포인트가 빗나갔다’고 지적한다. 유기농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화학성분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스탠포드 연구에서도 유기농 식품에는 일반 식품에 비해 살충제 성분이 낮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울러 유기농 육류는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 감염위험이 덜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자들의 결론을 얼마나 믿어야 하는 건지, 새로운 연구발표가 나올 때마다 소비자들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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